윤석열 정부는 최근 '조선인 강제동원 문구'도 포함하지 않은 채 일본의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일에 동의해줬다.
이에 일본의 만행이 역사에서 국제적으로 세탁되는 일에 협조했다는 지적이 국회를 중심으로 일었다.
일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할 때도 과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앞장서 일본을 변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밖에도 한국 정부는 △국가안보 전략책자에 독도 관련 내용을 삭제했고 △국방부 정신전력 교육 교재에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기재했으며 △독도 방어훈련을 비공개로 전환했고 △동해 영토수호 훈련을 올해 상반기에 실시하지 않는 등 친일 비판을 받을 만한 여지를 여럿 남겼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장이 오죽하면 용산 대통령실에 일본의 '밀정'이 있다고 날을 세웠을 정도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살펴보면 윤석열 정부가 이처럼 일본에서 원하는 행보를 보이는 이유를 '가치 외교' 차원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과 미국, 일본의 동맹 강화'이라는 가치외교 관점에서 미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맹목적으로 우호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것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같은 전문가들은 여러 방송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정치적 우호 관계를 넘어 한미일 군사동맹까지 맺어 우리나라가 군사적으로 일본의 하부 구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미국으로서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일본에게 일부 맡길 수 있으니 큰 이익이다. 군사대국으로 도약을 노리는 일본도 한미일 군사동맹을 구축한다면 지역 패권을 누리며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미일 동맹강화라는 가치 외교로 한국이 얻을 이익은 별로 없다. 지역 내 긴장만 고조되고 일본에 경제적·군사적으로 종속될 가능성만 커지게 된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종속되는 극단적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치자. 최소한 '라인 사태' 같은 일이 재발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 구글 출신의 IT전문가인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라인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비판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라인 사태는 일본 정부에서 한국기업 네이버를 상대로 개인정보 유출을 명분으로 메신저 라인의 운영사 라인야후의 지분을 일본 합작기업 소프트뱅크에 매각하라고 행정지도를 통해 압박했던 사건이다.
자칫하면 네이버는 일본과 동남아시아에서 월 이용자 수 2억 명을 가진 글로벌 메신저 플랫폼을 일본 기업에 눈 뜬 채 빼앗길 뻔했다.
그러나 야당을 비롯해 한국 내 반발 여론이 거세자 일본 정부는 한발 물러섰고 라인 사태는 현재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와중에도 우리 정부는 '기업 사이의 일' '일본 정부가 그럴 의도가 아니라고 했다' 등의 입장을 내놓으며 이렇다 할 조치를 사실상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일본 정부로서는 한국 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할 필요성이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제2의 라인 사태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외교가 이념 위주가 아니라 국익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 지정학적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국익 중심의 실리적 균형외교 전략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역사에서도 균형 외교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사례는 많다. 고려는 왕조 초기에 동북아 최강대국 거란과 송나라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고 때론 힘으로 당당히 맞서며 몽골 침입 전까지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반면 조선 16대 임금 인조는 기울어가는 명나라만 바라보며 '재조지은(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을 들먹이다 청나라에 처참하게 나라를 유린당해야 했다.
글로벌 합의에 따른 자유무역의 시대가 지나가고 최근 국제 정세는 경제가 정치와 외교의 하위 개념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으면 다른 나라에 당당하게 말해야 하고 여차하면 우방이라도 등을 돌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힘 센 나라들도 우리나라에 잘해준다.
우리나라는 스스로 만만하게 보이도록 굴지 않는 이상 제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절대 아니다.
군사력에서나 경제력에서나 모두 그렇다. 우리 정부가 외교에서 만만하게 보이도록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박창욱 정책경제·글로벌&기후에너지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