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도 정부 SOC 예산이 3.6% 줄었다. 사진은 서울~세종 고속도로 건설 현장. |
[비즈니스포스트] “솔직히 살만한 건설사 몇 개 빼면 다들 공공공사가 그나마 살 길이다. 특히 지방건설업계는 공공공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 만난 건설업계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만큼 업황이 악화하고 민간발주가 줄어든 상황에서 기댈 곳은 공공이 추진하는 SOC 물량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전날 발표된 정부의 2025년도 예산안을 보고 건설업계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 내년 SOC 예산이 올해 26조4422억 원보다 1조 원 가까이 삭감된 25조4825억 원으로 편성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긴축재정이라곤 하지만 12개 예산 분야 중 11개 분야 예산이 증액됐는데 SOC 예산만 유일하게 3.6% 줄었다.
최근 급등한 공사비를 고려하면 예산 감소에 따른 실질적인 SOC 사업 여력은 더 크게 축소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8·8 부동산 공급대책 등으로 건설경기 활성화를 향한 기대가 컸던 건설업계로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여러 SOC 사업이 완료돼 예산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1조1천억 규모 사업이 끝났고 현재 단계에서는 예산 부담이 큰 사업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진행하던 SOC 사업이 완료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예산이 줄었다는 건 종료 사업의 빈자리를 채울 신규 사업에 착수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거나 기존 사업들에 본격적으로 예산이 투입될 만큼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건설업계로서 달가운 일은 아니다.
앞서 건설업계는 내년도 SOC 예산을 늘려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대한건설협회는 5월 경제성장률 제고와 지역균형발전, 국민안전 확보를 위해 SOC 예산을 28조 원 이상 편성하도록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
2025년도 경제성장률 2.3% 수준을 달성하려면 모두 59조5천억 원 규모의 SOC 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 예산이 28조 원 이상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연구원도 최근 발간한 2분기 건설경기 동행지표 분석 보고서에서 침체한 건설경기 회복을 위한 정책 역할이 중요하다고 짚으면서 예산 증액 필요성을 제기했다.
건산연은 “단기간 효과가 있는 재정정책이 필요한 상황으로 건설경기 침체가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공공공사 투입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정부가 축소 편성된 SOC 예산안을 마련했으니 건설업계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비단 SOC 예산만이 아니다. 복지예산으로 잡혀있지만 사실상 건설분야 예산이나 다름없는 공공주택 예산도 깎였다.
이번 예산안에서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25만2천 가구의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예산은 18조1276억 원에서 14조8996억 원으로 3조 원 넘게 삭감됐다.
정부는 신축매입임대 사업기간을 고려해 예산을 3년에 걸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의 공급대책도 건설업계에 즉각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는 셈이다.
내년 건설경기는 크게 위축될 것이란 예상이 우세하다. 지난해 건축 착공면적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2009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저조했다. 상반기 착공면적 역시 크게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감소한 착공의 영향은 올해 하반기와 내년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건설업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한다. 건설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국민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기반으로 하는 뉴딜정책을 추진했다. 공공공사관리국, 공공사업진흥국, 테네시강유역개발공사 등을 통해 연방 재정을 투입하고 댐·다리 등 대형 SOC 사업을 진행했다.
당시 건설된 도로만 65만 마일, 다리는 7만8천 개, 공항이 800개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뉴딜정책은 2차 세계대전 전쟁경기에 따른 부흥으로 이어지는 디딤돌 역할을 해내면서 정부의 역할을 향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미국 뉴딜 정책 등 앞선 사례들을 참고해 건설경기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