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배터리 지원정책 실패에 그치나, 중국 물량공세와 미국 보조금에 밀려

▲ 유럽연합(EU)이 중국과 미국 등 다른 국가의 물량공세 및 지원 정책에 밀려 자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웨덴에 위치한 노스볼트 배터리 연구개발(R&D)센터 참고용 사진.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자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목표로 지원 정책을 시행하며 투자 유치에 힘써왔지만 결국 실패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제조사들이 물량공세를 통해 배터리 가격 경쟁을 주도하는 데다 미국은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우고 있어 유럽연합이 배터리 관련 투자를 유치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20일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 계획이 중국발 가격 공세에 밀려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국가는 2019년부터 중국 배터리 산업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두고 수십억 유로 규모의 지원을 통해 기업들의 유럽 내 생산설비 투자를 유치해 왔다.

폭스바겐과 스텔란티스,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러한 정책에 맞춰 배터리 생산 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최근 잇따라 투자 규모를 축소하거나 이를 원점에서 다른 방향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유럽 배터리 공장이 경제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큰 원인은 CATL과 BYD 등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생산 능력이 크게 늘어나면서 공급 과잉이 벌어져 가격 경쟁이 본격화된 점이 꼽힌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 평균 가격은 지난해 1킬로와트시(kWh)당 95달러 안팎에서 올해는 53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이제 기술 측면에서도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에 앞서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체 배터리 생산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불확실해진 셈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기업뿐 아니라 폴란드에 배터리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업체도 유럽 제조사들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후발주자로 나선 유럽 기업들이 자체 배터리 생산공장을 구축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갈수록 쉽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국과 캐나다가 현지 배터리 공장 확보를 위해 막대한 지원금을 들이는 상황도 유럽연합이 투자 유치 기회를 빼앗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노르웨이 프레이어배터리를 비롯한 유럽 기업들이 더 적극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북미 지역에 생산 투자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유럽의회와 영국이 2022년부터 현재까지 70억 유로(약 10조4천억 원) 미만의 보조금을 승인한 반면 미국은 2029년까지 배터리 등 친환경 산업에 1600억 달러(약 221조8천억 원)의 세제혜택을 지원할 계획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캐나다가 지난해 배터리 공장에 제공하기로 한 인센티브 규모만 따져도 250억 달러(약 34조7천억 원)에 이른다. 배터리 공장을 유럽에 지어야 할 유인책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유럽이 결국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을 중국 등 해외 국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앞으로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자동차는 유럽의 핵심 산업에 해당하는 만큼 이는 유럽연합 경제 전체에 중장기적으로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블룸버그는 “유럽이 배터리 공급망 자급체제 구축에 실패한다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결국 태양광과 전자제품, 반도체를 뒤따라 아시아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