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2차전지와 신재생기업이 긴장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 미국 등 선진국에서 친환경 정책에 비우호적인 정치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2차전지를 비롯해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산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기업들은 EU와 미국에서 2차전지와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분야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해왔는데, 정치 리스크가 사업 차질로 이어질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7일 산업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유럽 내 정치지형 변화에 따라 유럽의 친환경 정책기조에 일정 부분 수정이 생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선거 결과, 우파성향 정당·교섭단체의 약진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의 유럽보수와개혁(ECR)은 이전보다 7석 늘어난 76석을 확보하며 의석 수 4위에 올랐다. 극우 성향의 정체성과민주주의(ID)도 9석 증가한 58석을 얻으며 5위 교섭단체 지위를 획득했다.
▲ 유럽연합(EU), 미국 등 선진국에서 친환경정책에 비우호적인 정치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며 친환경산업을 강화하는 흐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2023년 9월13일(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연설하는 장면. <연합뉴스>
반면 진보성향 정치세력은 입지가 줄어든 가운데 친환경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참패한 정당으로 꼽힌다. 이들은 이전보다 18석 줄어든 53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며 의석 수 6위(기존 4위)로 밀렸다.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당장 EU의 친환경 정책에 전면 수정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중도 성향의 유럽인민당(EPP), 사회민주진보동맹(S&D), 리뉴유럽(RE) 등이 여전히 1~3위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이들이 친환경 정책에 기본적으로 우호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2050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그린딜 산업계획’에 대한 유럽 내 반발심리가 확인된 데다, 유럽 내 우파 득세에 따라 앞으로 친환경 정책에 태클리 걸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사무소는 현지 정보 보고서를 통해 “보수 성향 정치세력 약진으로 그린딜 정책 철회 등 극단적 영향력 행사는 어렵겠지만, 새로운 정책 도입에는 적극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며 "연정 그룹 내 갈등이 발생하면 정책 결정에 대한 보수 성향 그룹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린딜 정책의 한 축인 녹색당 지지율이 크게 하락한 만큼, 민의 반영을 위한 속도 조절론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 유럽의회 선겨결과가 반영된 유럽 의회 정당별 의석수. 짙은 붉은색은 좌익당(Left), 옅은 붉은색은 사회민주진보동맹(S&D), 녹색은 녹색당(Green), 하늘색은 리뉴유럽당(RE), 짙은 파란색은 유럽인민당(EPP), 파란색은 유럽보수와개혁(ECR), 옅은 파란색은 정체성과민주주의당(ID), 회색은 무소속, 옅은 회색은 당을 정하지 않은 신임 후보들이다. <유럽 의회>
정연우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유럽연합이 기존 펼쳐오던 기후 관련 정책이 역전되는 극단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판단하지만, 향후 EU의 기후위기 정책 도입 속도는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친환경정책 기조에 발맞춰 공격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해온 터라, EU 정책기조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투자 확대를 통해 늘려놓은 생산설비 가동률이 낮아지면, 향후 오랜 기간 수익성 악화를 감내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은 유럽 사업 비중이 크기 때문에 유럽 정치지형 변화에 따른 민감도가 다른 산업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유럽 2차전지 시장은 중국, 북미와 함께 세계 3대 시장으로 꼽힌다. 유럽은 북미와 함께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주력 시장이기도 하다. 배터리 3사 모두 유럽에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해 유럽 수요애 대응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친환경 정책 후퇴 흐름이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는 글로벌 친환경 산업의 명운을 가를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게 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 상당수가 철회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 재임시 친환경 산업에 대해 비우호적 태도를 보이며 화석연료, 자동차 연비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은 축소한 전례가 있다. 그는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며 글로벌 친환경 동조제체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유일한 파리협정 탈퇴국이 됐다.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1월22일(현지시각) 뉴햄프셔주 라코니아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수의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현실화한다면 트럼프 2기는 1기보다 더 강하고 급진적인 산업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를 통한 친환경 산업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거나 대폭 축소되고, 화석연료 발전과 내연기관차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는 정책이 시행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만난 비공개회의에서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정책을 철회할 것”이라며 “배터리와 전기차에 대한 모든 의무는 미친 짓”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친환경 산업에 대한 지원·규제 정책이 다소 약화될 가능성이 높은 현재의 정치지형은 완성차 기업들의 2025~2026년 전기차 판매계획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당장 내년 전동화 계획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올해 4분기 배터리 주문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