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유럽 무역보복 여파 K-배터리로 번질까, 흑연 포함 소재 무기화 가능성

▲ 중국 정부가 유럽연합(EU)의 전기차 관세 인상에 보복조치를 시행하며 희귀금속 등 핵심 소재를 수출 제한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 본부.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전기차에 고율의 관세 부과를 결정하며 중국 정부가 무역보복 조치를 비롯한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중국이 유럽산 자동차와 명품, 농산물 등에 고율 관세를 매기거나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소재 수출을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 맞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유럽의 전기차 관세에 보복할 여러 수단을 갖추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관측이 제기된다.

유럽연합은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38%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생산을 지원해 저가 수출을 유도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에 반발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유럽연합을 제소하는 방안뿐 아니라 자국 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이는 사실상 무역보복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관계자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중국이 이미 다방면으로 유럽연합의 관세 보복에 맞대응할 수단을 갖춰놓았을 것이라는 분석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유럽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와 명품, 농산물 등 중국시장에 의존이 높은 상품을 대상으로 관세 인상 등 수입규제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부터 중국의 전기차 부당 지원 의혹을 두고 조사를 진행해 왔다. 중국 정부로서는 조사 결과에 따른 대책을 마련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유럽의 약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만큼 흑연과 게르마늄, 갈륨, 희귀금속 등 친환경 산업에 필요한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해 무기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소재는 주로 전기차 배터리 등에 활용된다. 자연히 유럽에서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업체도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

한국 배터리 3사는 이미 미국의 대중국 무역규제 강화로 중국의 보복이 예상되며 북미 공장에서 배터리 소재 공급망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유럽연합의 대중국 규제로 유럽 시장에서도 비슷한 리스크를 맞게 될 수 있다.

배터리 업체들은 흑연을 비롯한 필수 소재 조달처를 중국 이외 지역으로 다변화하며 공급망에 잠재적 리스크를 낮추는 데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필수소재 분야가 많아 단기간에 해결책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의 유럽 무역보복 여파 K-배터리로 번질까, 흑연 포함 소재 무기화 가능성

▲ 중국 CATL의 헝가리 전기차 배터리 공장 예상 조감도 참고용 이미지.

다만 중국은 미국과 장기간 무역 분쟁을 벌이는 상황에도 이러한 소재 공급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중국 경제 성장률 회복이 시진핑 정부에 시급한 과제여서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무역규제를 시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이번 결정이 아직 주요 회원국의 동의를 거쳐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도 중국이 바로 극단적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독일과 헝가리 등 일부 회원국은 이미 자국 산업에 받을 타격을 우려해 유럽연합의 결정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의 무역보복이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폴크스바겐 등 중국에 사업 비중이 큰 유럽 자동차 제조사를 겨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블룸버그는 중국 역시 유럽연합의 더 강력한 대응 조치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어 본격적인 ‘무역 전쟁’이 벌어지는 일을 피하려 할 공산이 크다고 바라봤다.

중국이 유럽을 대상으로 수입 규제를 시행할 수 있는 품목보다 유럽의 제재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품목이 더 많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의 유럽산 제품 규제는 육류와 치즈, 주류 등 상징성을 띤 제품에 적용되는 선에서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독일 조사기관 메릭스는 블룸버그를 통해 이러한 분석을 전하며 “중국은 자국이 필요로 하는 유럽의 상품을 규제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결국 자동차 및 배터리와 같이 민감하고 유럽에 중요도가 높은 산업을 중국이 무역보복 대상으로 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무역보복을 통해 유럽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대신 유럽 국가 소속의 기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유화책을 쓸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