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의 의대 증원이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한 바이오헬스산업 성장을 위해 의사 면허를 보유하고 의학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의사과학자’의 배출 확대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의대 증원에 '의사과학자' 양성도 있나, 바이오헬스 근간 위한 대책 마련 시급

▲ 앞으로 의사 증원 만큼이나 의사과학자 양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케티이미지>


일각에서는 늘어나는 의대정원의 일정 비율을 의사과학자로 뽑자는 제안도 나온다.

의대증원과 더불어 의사과학자 양성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26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의대생과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 가운데 의사과학자를 선택하는 비율은 1% 미만으로 매우 저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등을 위한 의사과학자 양성 과제 보고서’에서 “의대와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은 연간 3800명 정도인데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졸업생은 30명 정도로 1% 미만”이라며 “의과학대학원도 대부분이 자연과학대나 공대 졸업생으로 충원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의사과학자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명확히 정의된 바는 없으나 일반적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거나 질병을 연구한 결과 또는 관련 분야의 과학기술을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단계까지 연계해주는 중개연구자를 뜻한다.

의사과학자 공급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이유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바이오헬스 산업 분야에서 신약 연구개발(R&D) 등을 이끌어갈 의사과학자를 늘려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2023년 글로벌 의약품 시장 전망’에 따르면 의사과학자들이 주로 진출하는 분야인 글로벌 제약 시장은 2022년 1조4820억 달러(약 2019조2250억 원)에서 2027년에는 1조9170억달러(약 2611조9천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조사됐다.

바이오협회의 2023년 12월 국내 바이오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산업 매출 규모도 2018년 10조6067억 원에서 2023년 23조4657억 원으로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세계 주요 바이오헬스 기업들에서는 의사과학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화이자, 노바티스 등 다국적 제약회사 상위 10곳 중 7곳의 최고과학책임자(CSO)는 의사 출신이다. 의사과학자들은 화이자와 모더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주도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사과학자의 절대적 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대 의과대학원 의과학과의 신입생 가운데 의사면허를 보유한 인원은 26명으로 연평균 5명에 그쳤다. 카이스트(KAIST) 의과학대학원 졸업생은 100명이 넘지만 실제 의사과학자로 안착하는 경우는 졸업생의 10%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생의 자율적 의사에만 의존해서는 국내 의사과학자 양성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의사와 비교해 의사과학자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 결과 2020년 기준 의료기관 근무 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3천만 원이다. 반면 2022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소 25곳의 초임 평균연봉은 지난해 기준 4313만 원이다.

입법조서처에서는 의사과학자 양성이 어려운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불안 △연구 및 진료업무 부담 △군입대로 인한 연구중단 △연구기금 지원 중단에 따른 연구개발 단절 △관계 부처 간 통합 연계 부족 등을 꼽았다.
 
의대 증원에 '의사과학자' 양성도 있나, 바이오헬스 근간 위한 대책 마련 시급

한덕수 국무총리(왼쪽)가 2월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방송 유튜브 갈무리>


전문가들은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 ‘처우 개선’과 ‘연구의 안정성’이 확보돼야한다고 바라본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은 과학기자대회에서 "미국도 의사과학자 100명이 출발하면 단계별로 누수돼 빠져나간다"며 "이들은 낙오하는 게 아니고 개업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퇴로가 있는 이들을 잡아놓으려면 엄청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사과학자인 고규영 카이스트의과학대학원 교수도 같은 행사에서 "의사 과학자들이 연구할 분위기가 안 돼 임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의사 과학자 양성’을 12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상황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2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포스텍이나 카이스트에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공과대학 의대 신설이 요구된다고 하자 "동의한다"고 입장을 말했다.

경상북도는 지난 23일 포스텍(50명)과 안동대(150명)에 각각 의대를 신설해 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대가 지난 3월 초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의과학과’를 의대 학부에 신설하겠다며 정원 50명을 신청한 데 대해 정부가 이를 불허한 점에서 볼 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의대증원이 현실화되는 것을 계기로 일정비율을 의사과학자에 할당하고 교육체계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떠오른다.

입법조사처는 “늘어나는 의대 정원의 일정 비율을 ‘의사과학자 트랙’으로 지정하고 별도 선발체계와 교육과정을 적용해 의사과학자를 육성해야한다”며 “의대정원을 2천 명으로 늘리더라도 모두 의사만 선발하면 이공계 우수 인력의 의료계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고 의학 교육의 질이 하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