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기업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에 경쟁력 부담 커져, IRA 보조금 일부 토해내야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진해 140여 개 국가의 합의로 제정된 글로벌 최저한세가 올해부터 적용된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세액공제 혜택을 노리고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글로벌 최저한세가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프랑스 파리 OECD 본사 정문. <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세액공제(AMPC) 혜택을 염두에 두고 공격적으로 북미에 투자를 하고 있지만, 올해부터 적용되는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에 따라 세제혜택 일부를 그대로 토해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배터리 업계와 전문가들은 세계 시장에서 중국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상황에서 글로벌 최저한세 적용에 따른 투자여력 축소가 국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유럽 등이 ‘탈중국’을 외치며 자국 투자 유치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데,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이 이같은 '탈중국화'와 엇박자를 내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배터리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글로벌 최저한세 전면 시행으로 가뜩이나 수요 부진으로 경영이 악화한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진해 140여 개 국가가 합의한 국제조세 개편안이다. 연결 기준 매출 7.5억 유로(약 1조 원)를 넘는 다국적 기업은 사업장이 위치한 국가에 납부한 세금의 실효세율이 15%를 넘지 않으면, 차액을 모기업이 위치한 국가에 납부해야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의 사례를 보면 지난해 45기가와트시(GWh) 규모였던 미국 내 배터리 생산이 올해 130GWh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약 6700억 원 규모였던 IRA 보조금은 올해 최대 2조 원까지 증가하게 된다. 단순 계산으로 보조금의 15%인 3천억 원의 추가 세금이 발생할 수 있다.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고 투자 유치를 위한 경쟁적 법인세 인하를 막기 위해 제정됐지만, 기업들은 추가 세금 부담을 안을 수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양인준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세법 교수는 “미국에서 받은 세액공제 등 혜택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며 “그로 인해 개별 첨단산업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에서 받는 AMPC 혜택의 감소로 미국 생산시설 확충에 따른 이점이 대폭 감소하게 된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최근 오창과학산업단지를 방문한 김창기 국세청장에 “여러 세제혜택을 받아 투자 효율을 높이고 재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최저한세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어서 미국에 투자했는데, (글로벌 최저한세로) 미국에 투자한 근본적 목적이 상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배터리기업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에 경쟁력 부담 커져, IRA 보조금 일부 토해내야

▲ LG에너지솔루션이 투자하고 있는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홀란드 제2공장 건설 현황. < LG에너지솔루션 >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최저한세로 실질적으로 AMPC 혜택이 감소해 미래 투자 여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며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가 ‘탈중국’을 뼈대로 하는 ‘한미 배터리 동맹’과 엇박자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과 달리 중국 업체들은 대체로 자국에 공장을 건설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미국 IRA 혜택에서 배제돼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최저한세를 시행해도 중국 기업 입장에선 크게 달라질 게 없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에 가장 악영향을 받는 곳은 미국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한국 기업들”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는 글로벌 최저한세 관련 시행령이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다른 국가와 비교해 너무 빠른 최저한세 관련 시행령 도입으로 기업 부담을 늘리는 건 첨단산업 육성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선제적 입법이 필요했는지 의문”이라며 “좀 더 입법동향이나 추세를 보고 천천히 진행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는 "범세계적 차원에서 통일된 내용을 담아 입법조치를 하자는 게 글로벌최저한세의 기본 콘셉트”라며 “시행령을 통해 뭔가 기업을 해줄 수 있는 게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현 법무법인 율촌 공인회계사는 최근 ‘IRA와 글로벌 최저한세 대응 세미나’에서 “국내 세법 개정을 통한 접근법이 제시됐으나 글로벌 최저한세는 OECD 공통접근 방식으로 도입된 제도”라며 “직접적 해결책은 OECD 행정지침 변경을 통한 특례 허용”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최저한세 적용과 관련해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아직 최저한세가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 대응책을 준비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앞으로 커질 AMPC 혜택 규모에 따라 글로벌 최저한세 대응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