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의 일상은 하루하루 허물어지고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존엄을 지킬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영화의 제목 ‘아무르’는 불어로 ‘사랑’이라는 뜻이다. 역설적인 제목은 누군가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은 크고 깊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사진은 영화 '아무르'의 한 장면. <티캐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 한 100세 시대를 살면서 전에 없던 축복을 누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민의 골도 깊어졌다.
60~70대에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워도 이상하지 않고 환갑잔치 같은 것은 20세기 유물로 여겨지는 시대다. 문제는 죽음에 다다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질병에 시달리는 시간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연명장치를 거부하는 증서를 미리 마련해 두는 건 이제 흔한 일이다.
2010년 이후 존엄한 죽음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들이 부쩍 늘었다. 오늘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영화 두 편을 살펴보면서 우리 사회가 생각할 화두를 찾아보고자 한다.
‘퍼니 게임’, ‘하얀 리본’, ‘피아니스트’ 등을 연출한 독일 거장 감독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프랑스에서 만든 ‘아무르’(2012)는 존엄을 잃어가는 노인이 겪는 참담함과 이를 바라보는 배우자의 슬픔을 매우 잔잔하게 그린 영화다.
젊은 시절 음악가로 활동했던 노부부는 둘만의 여유롭고 호젓한 노년의 삶을 이어간다. 성공한 옛 제자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처럼 외출했던 부부는 행복한 저녁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보다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부부는 다음 날 평소와 똑같은 아침 식탁에 마주 앉는다.
그런데 아내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던 중 갑자기 멍한 표정으로 정지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곧 정신이 돌아오긴 했지만 정밀 진단 결과 뇌에 출혈이 있다는 판정을 받는다. 이후 아내는 남편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생활하려고 고군분투한다.
영화 중반 다소 긴 페이드아웃 이후 상황은 급변한다. 아내가 잠을 자다가 침대에 실례를 해버린 것이다. 부부의 일상은 하루하루 허물어지고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존엄을 지킬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영화의 제목 ‘아무르’는 불어로 ‘사랑’이라는 뜻이다. 역설적인 제목은 누군가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은 크고 깊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다 잘 된 거야’(2022)는 ‘시트콤’, ‘스위밍 풀’, ‘8명의 여인들’, ‘인 더 하우스’, ‘영 앤 뷰티플’ 등 쉬지 않고 작품을 내놓은 대표적인 프랑스 감독 프랑스와 오종 연출작이다. 다양한 소재와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 온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연륜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소설 원작을 각색한 이 영화는 조력자살로 이루어지는 안락사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도와줘, 끝낼 수 있게”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는 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가 엠마뉘엘은 아버지 앙드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공장을 운영하며 미술품 수집가로도 명성이 높은 앙드레는 자신만만하고 고집 센 성격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평생에 걸쳐 성취한 인물이다. 줄줄이 호스 줄을 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식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앙드레는 병실에 온 딸에게 나가라고 소리친다.
앙드레는 쓰러진 순간부터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고 결심하였기에 딸에게 자신의 뜻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황당한 부탁에 화가 난 딸은 병실을 뛰쳐나간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버지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의지가 굳건하다는 것을 확인한 딸은 결국 아버지를 돕기로 결정한다. 안락사와 관련해 알아보고 스위스에 있는 한 단체와 접촉을 한다.
앙드레의 증상이 처음보다 호전되자 가족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는 관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휠체어를 타야 하지만 외출도 할 수 있고 혼자 식사도 할 수 있는데 과연 안락사를 해도 되는 걸까?
이 지점부터 안락사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 조력자살, 소극적 안락사 등으로 구별된다. 연명장치를 거부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대부분의 국가가 허용하는 편인 반면 적극적 안락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이다. 안락사가 합법인 나라라도 자국민에 한해서인데 스위스는 예외적으로 외국인도 가능하다.
‘다 잘 된 거야’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명인들의 안락사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미남 알랭 들롱이 안락사를 하기로 결정했다거나 전 네덜란드 총리 부부가 한날한시에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 등을 접하곤 한다. 어둡고 무거운 주제이긴 하나 외면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다양하고 심층적인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