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인공지능(AI) 산업의 기본 틀을 정하게 될 'AI기본법' 제정이 늦어지면서, 세계 국가 간 AI 경쟁에서 한국이 크게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IT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21대 국회에서 상정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이하 AI기본법안)은 자동 폐기되고, 22대 국회에 바통을 넘겨주게 됐다.
 
유럽 미국 일본 AI기본법 제정 서두르는데 한국은 언제? AI 주도권 빼앗길라

▲ AI산업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산업의 영역을 명확히 설정해주는 AI기본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I기본법안은 △AI 기술 도입과 활용 지원 △AI 기술 개발과 창업 지원 △AI 윤리 원칙 △AI 신뢰성 확보를 위한 근거 마련 △고위험영역 AI 고지의무 부과 등의 내용을 담은 법이다.

AI산업 육성과 규제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실을지를 두고 시민단체와 IT업계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이번 21대 국회 회기 내 처리가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AI기본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측은 AI 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가짜뉴스나 인권침해 등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2023년 8월24일 이 법 제정에 제동을 걸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AI법은 실효적 규제 수단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특히 인권침해, 차별 등의 문제를 예방, 규제하기 위한 규정이 미흡하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2024년 5월10일 성명을 통해 "법을 위반한 사람을 처벌할 수 있어야 비로소 AI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EU가 최근 제정한 AI법을 보면 단순히 기업에 민감한 영역에 대한 금지조항을 둔 것을 넘어 벌금 등의 처벌규정을 마련해놨다. 규제 골자는 △개인정보 보호대책 △잠재위험 평가대책 △정보공개 범위 △사고 발생시 대책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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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이 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정부와 산업계는 우선 AI기본법을 마련한 뒤, 추가 입법이나 시행령을 통해 대책을 보완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이미 한국은 AI산업에서 글로벌 빅테크들에 한참을 뒤처져 있다"며 "너무 강력한 규제를 만들었다가 향후 수 년간 두고두고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에서 “시민단체가 제기한 우려는 모두 해소됐다"며 "AI기본법이 통과되야 AI 악용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시행령에 담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AI산업의 기본 틀을 짜는 데조차 어려움을 겪는 것과 달리 세계는 AI 산업 주도권을 쥐기 위해 관련 법 제정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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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10월30일 AI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유럽연합은 세계 최로로 AI 규제법을 제정하며, 사업자들의 서비스 영역을 명확하게 규정했다.

2021년 초안이 발의된 지 3년 만이다. 이 법은 AI 서비스를 4개 위험 등급으로 나눠 차등 규제하고, 고성능 AI을 개발하는 일부 기업에는 저작권보호와 정보공개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법률 위반시 매출의 1.5~7%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처별규정을 포함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3년 11월 발표한 AI 행정명령 이후 주별 규제법을 만들어 AI 산업의 경계를 확정짓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AI 행정명령의 주요 내용은 AI 안전성 평가 의무화, AI도구의 안전성 표준 마련, 콘텐츠 인증표준 수립, 개인 정보보호 강화 등이다. 최근까지 미국 내 16개 주가 AI법을 자체 제정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22일 ‘AI 전략회의’를 개최하고 AI 안전성 확보를 위한 규제법 마련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지난 4월 법적 구속력이 없는 AI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기업의 자율적 통제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번에 ‘규제법 제정’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