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캘리포니아주 메니피의 43에이커 부지에 건설되는 ESS 설비에 중국 BYD가 제조한 배터리가 설치된 모습. 이는 캘리포니아주 내 ESS 설비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한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에너지 저장장치(ESS)에 탑재되는 중국산 리튬이온 배터리에 관세율을 높이기로 결정하면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사업 기회를 넓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산 ESS용 배터리는 그동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규제 대상이 아니었던 지라 이번 관세 인상 정책으로 한국산 배터리가 가격 경쟁력을 높일 길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에너지스토리지를 비롯한 미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중국산 비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에 적용되는 관세율이 기존 7.5%에서 2026년 25%로 3배 이상 인상되면 K배터리 기업들에 긍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비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대표적 품목인 중국산 ESS용 제품의 관세율이 오르면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enchmark Mineral Intelligence)는 “새로운 관세율이 도입되면 중국산 배터리셀 가격이 미국에서 제조하는 제품보다 비싸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특히 중국산 ESS 배터리가 그동안 IRA 관련 규제를 받지 않았다는 점은 이번 관세율 인상 정책에 따라 중국업체 점유율 하락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지목된다.
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ESS용 배터리는 IRA에 따른 해외우려단체(FEOC) 규제를 받지 않았다. 이와 달리 전기차용 배터리가 FEOC 규제를 받아 중국산 전기차의 대미 수입이 사실상 막혀 있었는데 이번 관세 인상 정책으로 이와 유사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스토리지는 “이번 관세율 인상은 ESS용 배터리 업계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중저가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미국 ESS 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테슬라가 CATL의 제조 장비를 활용해 미국 현지에 ESS용 LFP 배터리 제조 공장을 설립한 사실은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진다.
▲ 4월3일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신설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의 ESS 공장 공사 현장에서 회사 관계자 및 주정부 인사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병수 LG엔솔 애리조나 생산·기술 총괄, 로빈 사히드 애리조나 토지국장, 김정수 LG엔솔 소형 생산센터 상무, 마이크 굿맨 피넬 카운티 의장, 오유성 LG엔솔 소형전지사업부장 전무, 케이티 홉스 애리조나 주지사, 김형식 LG엔솔 ESS전지사업부장 상무, 산드라 왓슨 애리조나 상무국 사장 겸 CEO, 나희관 LG엔솔 애리조나 법인장(상무), 줄리아 휘틀리 퀸 크릭 시장, 오원규 LG엔솔 인프라 센터장, 크리스 카마초 그레이터 피닉스 경제위원회(GPEC) 회장. < LG에너지솔루션 > |
이에 맞서 ‘K배터리’ 3사는 미국에 ESS 전용 현지 공장 신설을 추진하며 중국 업체과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17기가와트시(GWh) 규모의 ESS용 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전용 공장을 지난 4월 착공했다.
삼성SDI와 SK온 또한 ESS용 배터리만 생산하는 공장 건설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한국 등에서 제조한 ESS용 배터리를 공급할 고객사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ESS용 LFP 배터리를 양산 목표 시점 또한 2026년 전후여서 중국 ESS용 제품의 관세율이 오르는 시기와 맞물린다.
이번 대중 관세율 인상을 계기로 한국 기업들이 고객사를 확보하기 더욱 수월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현재 미국에서 쓰는 ESS용 배터리 대부분은 중국에서 생산돼 들어오지만 이들은 무역 분쟁에 취약하다”라고 짚었다.
ESS용 대형 배터리는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 시대 필수 전력장치로 떠오르는 제품이다.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둔화된 상황에서 배터리 기업들에 새로운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공급을 꾸준히 늘리면서 ESS 배터리에 정책적 지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ESS 설비가 보완할 수 있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문조사업체 우드맥킨지는 북미지역 ESS 시장 규모가 2022년 12기가와트시(Gwh)에서 2030년 103기가와트시로 8년 동안 10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전력 수요량이 급증한다는 점 또한 ESS 시장 성장세를 촉진할 요소로 꼽힌다.
결국 중국산 배터리 관세율 인상을 계기로 K배터리 3사가 성장 잠재력이 높은 미국 ESS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에너지컨설팅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는 “미국 ESS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제조업체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