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백브리핑] 건설업체 재무제표는 여전히 평온, 숨어있는 손실 닥쳐온다

▲ 태영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16일 주요 채권기관 18곳을 대상으로 실사 결과 및 자본확충방안 등에 대한 설명회를 열고 태영건설 정상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태영건설 정상화 방안의 초안이 16일 공개됐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18개 주요 채권기관을 대상으로 실사 결과 및 자본확충방안 등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알려진 내용의 골자는 이렇다.

TY홀딩스(태영그룹 지주회사)가 태영건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여금 7300여억 원 가운데 4000억 원은 출자로, 3300억 원은 영구채(신종자본증권)로 전환해 태영건설의 자본을 확충해 준다.

채권단은 무담보채권 7000억 원 가운데 3000억 원을 출자전환한다. 이렇게 되면 1조원이 넘는 자본확충으로 태영건설은 자본완전잠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태영건설 실사 결과에 대한 산업은행의 평가다.

회계법인이 산출한 계속기업가치가 예상보다 긍정적이어서 채권단의 신규 자금지원 규모를 1000억 원으로 줄일 예정이라는 것이다.

지난 2월 채권단협의회에서 의결했던 신규지원은 4000억 원이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일단 태영건설 정상화에 파란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건설업계 전체에 대한 시장의 암울한 전망은 여전하다.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 때문에 건설업계 전체가 고전을 이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신용평가업체 한국기업평가가 공개한 건설업 전망 보고서는 지금의 건설업계 재무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손실의 시대, 건설업의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라는 제목이 붙은 보고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보고서는 우선 “재무제표 밖에 있었던 PF 우발채무가 불러온 결과들에 비해 건설업 재무제표는 여전히 꽤 평온해 보인다"는 지적으로 시작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업종 침체기인 2007년~2014년까지의 실적은 3가지 메시지를 던져준다.

첫번째는 "매출은 최후의 순간까지 미분양의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분양이 쌓여도 건설사의 매출은 감소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험이 눈 앞에 닥치는 순간까지도 손익계산서상의 매출변화는 관찰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100억 원짜리 오피스텔 도급공사를 3년간 진행하는데 1년차 공사진행률이 30%라고 해보자.

그럼 매출액은 30억 원(100억 원X30%)이 된다. 투입한 원가가 25억 원이라면 공사이익은 5억 원으로 산출된다.  

2년차 진행률이 40%라면 매출액 40억 원이다. 투입원가가 30억 원이라면 공사이익은 10억 원이다.
 
건설업체는 이처럼 원가를 투입해서 공사를 진행하기만 하면 손익계산서에 매출과 손익을 기재할 수 있다.

도급공사에서는 분양률이 건설사의 매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분양률이 낮다면 건설사로서는 공사대금을 회수하는 데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받는 것이다.
 
보고서는 "건설업의 리스크는 현금흐름표,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의 순서로 관찰된다"고 지적한다. 건설경기 침체기에는 현금흐름표 모니터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보고서는 도급액 1000억 원 규모 공사(예정공사비 900억 원, 공사기간 3년) 사례를 들어 미분양이 현금흐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3년동안 공사는 예정대로 100% 진행이 됐다.

그러나 분양은 해마다 20%씩, 3년동안 누적 60%의 분양률을 기록했다. 40% 미분양이 발생했다.

공사를 예정대로 진행했으니 합계 매출액은 도급액과 같은 1000억 원으로 기록된다. 원가는 900억 원이 들어갔으니 매출이익은 100억 원으로 산출된다. 이것이 손익계산서의 모습이다.

그런데 현금흐름을 들여다보면 양상이 달라진다.

공사비는 900억 원이 투입되었지만 분양률이 낮다보니 공사대금회수액은 3년동안 매년 200억 원씩(누적 600억 원)에 그쳤다. 결론적으로 이 건설업체는 공사완료 뒤에도 300억 원의 현금부족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보고서는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2007년 전후 사업장이 급증하였는데 준공시점인 2010년쯤부터 건설사들의 대규모 대손이 발생했다"고 말한다.

높은 수준의 미분양이 지속되면서 공사대금 회수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이 재무제표에 드러난 것이 거의 준공시점에 이르렀을 때라는 것이다.
 
두번째 메시지는 "건설사 부실화는 금융권 차입이 아닌 비금융권 차입금 미상환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겠다.

시행사는 PF 유동화증권 발행방식으로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온다. 이 증권은 만기가 대개 3개월이다. 1회차 증권 만기가 되면 2회차 증권을 발행한다.

2회차 투자자들이 낸 돈으로 1회차 투자자들의 원리금을 내준다. 마찬가지로 2회차 만기가 되면 3회차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2회차 상환을 한다.

말하자면 차환발행을 계속 해 나가는 것이다. 마지막 발행이 10회차라면 이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시행사가 부동산프로젝트에서 창출한 현금으로 상환하면 된다. 

건설사는 이런 유동화 증권에 대해 보증을 서는 경우가 많다. 만약 차환발행에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들이 보유한 증권을 건설사가 매입해 주겠다는 약정이다. 

부동산 경기 냉각으로 차환발행이 안되고 건설사가 유동화 증권을 떠안았다고 해보자.

건설사는 재무제표에 이를 단기금융투자상품으로 잡아놓는다. 건설사가 보유한 단기금융상품이 갑자기 증가했다면 돈을 많이 벌어 금융상품투자를 늘렸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PF유동화증권을 떠안은 것은 아닌지 재무제표의 이면을 잘 살펴봐야 한다.
 
보고서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역시 금융권 차입이 아닌 PF유동화증권의 차환실패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아울러 PF 신용보강 뿐 아니라 매입채무 미지급도 잘 관찰하라고 지적한다.
 
건설사는 재무구조가 악화해 금융권 대출이 축소되고 신규대출이 중단되면 매입채무(외상값) 결제기간을 늘려서라도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도 건설업체 대부분은 부도 발생 1~2년전부터 매입채무 결제기간이 늘어났다.
 
세번째 메시지는 "경기침체기 건설사 실적은 소수의 미분양 프로젝트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진행중인 다수 사업들의 분양률이 양호하더라도 미분양이 발생한 1~2개 사업장에 대한 PF 또는 미수금이 부실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건설업의 부실위험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보고서는 건설업의 사업 진행구조 및 매출인식방법의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실제 부실이 나타나기 전에는 외부에서 재무제표를 보고서 위험신호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기업평가 유효등급을 보유한 17개 건설사를 분석한 결과 현재 재무제표에는 미분양 관련 손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2022년 전후 착공프로젝트들의 준공이 도래하는 2025년을 전후로  미분양 관련 손실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주택경기 침체기였던 2014년 평균 대손율은 20%였다. 2023년 현재는 9.8%이니 대손반영이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김수헌 MTN 기업&경영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