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SK·LG·삼성 오너가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각 그룹은 최종 재판 결과에 따라 기존 지배구조가 흔들리거나 경영공백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노소영의 2조 원 재산분할 요구, SK그룹 흔들까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김시철·김옥곤·이동현 부장판사)는 12일 오후 2시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첫 변론기일을 연다.
 
재계 총수들 사법 리스크 또 수면 위로, SK·LG·삼성 '법정 공방' 촉각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첫 변론기일이 12일 진행된다.


당초 항소심 첫 변론기일은 1월11일에 잡혔으나, 노 관장 측에서 재산분할 청구액을 기존보다 2배 많은 2조 원대로 올리는 내용의 항소취지 증액 등 변경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한 차례 미뤄졌다.

노 관장은 당초 1심에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의 50%(649만여 주)를 재산분할로 요구했다.

당시 노 관장이 요구한 SK 지분가치는 약 1조 원이었고, 위자료는 3억 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억 원의 위자료와 재산분할로 665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특히 법원은 노 관장이 요구한 SK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재산분할 액수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 관장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심에선 SK 주식 대신 재산분할액으로 현금 약 2조원을 요구하고 있다.

항소심 법원이 노 관장 측이 주장하는 2조 원대의 재산분할액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이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 회장은 SK 지분 17.73% 외에 SK디스커버리 0.11%, SK디스커버리 우선주 3.11%, SK케미칼 우선주 3.21%, SK텔레콤 주식 303주, SK스퀘어 주식 196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8일 종가 기준으로 SK 지분 가치는 2조4600억 원, 나머지 지분과 주식 가치는 45억 원 가량이다. 노 관장이 요구한 2조원 재산분할액을 마련하려면 최 회장은 소유 지분 거의 대부분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항소심 결과가 1심 법원의 판결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우선 국내에서는 결혼 전에 형성됐거나 상속으로 취득한 재산이 ‘특유재산’으로 분류돼 원천적으로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 판례라는 것이다.

이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주의 전 아내인 맥킨지 베조스가 이혼 합의 대가로 50조 원 넘게 받은 것과 같은 사례가 국내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또 노 관장이 결혼한 뒤 SK그룹의 기업가치 증대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한 것이 인정되더라도, 이를 수조 원대까지 평가하기는 것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1심 법원은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1.2%로 판단했다.

◆ LG그룹, 상속분쟁에 경영권 불안정 가능성

LG그룹 오너가도 4월2일 상속분쟁 변론준비기일을 앞두고 있다.
 
재계 총수들 사법 리스크 또 수면 위로, SK·LG·삼성 '법정 공방' 촉각

구광모 LG그룹 회장(사진)의 상속회복청구소송 변론준비기일이 4월2일 진행된다.


변론준비기일은 사건에 대한 쟁점과 증거, 증인 채택 여부 등을 정하는 절차로, 이번이 세 번째다.

2018년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별세한 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선대회장의 지분 11.28% 가운데 8.76%를 상속받았다.

구 회장의 어머니 김영식 여사와 두 여동생은 LG 주식의 2.52%와 구 선대회장의 금융상품·부동산·미술품 등 약 5천억 원의 재산을 나눠 받았다.

현재 구광모 회장은 LG 지분 15.95%, 김영식 여사는 4.2%, 구연경 대표는 2.92%, 구연수씨는 0.72%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세 모녀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정상속 비율대로 LG 지분이 재분배된다면, 구 회장의 지분율은 9.7%로 줄어들고 세 모녀의 지분율 합계는 14.09%(김영식 7.95%, 구연경 3.42%, 구연수 2.72%)로 늘어나게 된다. 재판 결과에 따라 구 회장의 그룹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11월에 열린 상속회복청구 소송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김영식 여사가 “구연경 대표가 잘 할 수 있다.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다시 받고 싶다”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번 상속 분쟁은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언장에 대한 세 모녀의 인지 여부, 상속 소송의 제척기간(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로 기간이 지남으로써 권리가 소멸되는 기간) 등이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세 모녀 측은 구 회장이 경영재산을 받는다는 유언장이 없었다는 사실을 2018년 11월 상속재산 분할 당시에는 몰랐고, 시간이 지나서야 인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 회장 측은 세 모녀가 고인의 유지를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상속재산 분할을 협의했다고 맞서고 있다. 또 2018년 11월 재산 분할을 협의할 때로부터 4년 이상이 지났으므로 제척기간이 이미 지났다고 주장하고 있어 소송이 각하될 가능성도 있다.

민법은 상속회복청구권이 상속권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을 넘기면 소멸하는 것으로 본다.

◆ 삼성, 끝나지 않은 사법 리스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다시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총수들 사법 리스크 또 수면 위로, SK·LG·삼성 '법정 공방' 촉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은 검찰의 항소로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2월5일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 관련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하고 지난 2월8일 서울지방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사법 리스크는 계속 남게 됐다.

이 회장의 항소심 사건은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에 배당됐으며, 첫 공판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으나 상반기 중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4월22일 1차 공판이 열린 뒤 107번의 공판을 거쳐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5개월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회장은 적어도 내년까진 재판장에 출석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이 올해 5년 만에 등기이사로 재선임될 것이란 일각의 예측과 달리 등기이사 복귀를 미룬 것도 이같은 사법 리스크를 감안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앞선 2019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내린 판단과 이번 1심 판결이 상충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며 “최소 비용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됐다”고 판시했다.

반면 이번 1심 재판부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대법원과 전혀 다른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대법원이 ‘승계의 불법성’까지 판단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 취지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항소심에서 여전히 논쟁 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김남근)는 2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의혹 1심 판결문 분석 좌담회’에서 “(1심) 판결문에서는 일부 부인하지만, 이미 확정된 다른 관련 사건의 사실관계 판단과 모순되는 여러 판단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