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젊은 세대에서 흔히 말하는 이른바 '헬조선'은 과장일까. 지옥에 비유될 만큼 과연 우리나라는 그리 살기 힘든 나라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일상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지 세계 기구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면 헬조선은 젊은 층의 나약함이나 무기력에서 비롯된 응석만은 아닌 걸 바로 알 수 있다.
▲ 미세 먼지가 가득한 서울 도심의 모습.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삶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 수준의 나라로 조사됐다 <연합뉴스>
먼저 삶의 만족도부터 살펴보자.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작성되는 ‘더 나은 삶 지수(BLI)’ 지표 중 하나로 UN의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서도 활용되는 지표이다.
이는 삶에 대한 평가 항목으로 0~10점 척도 평균 점수를 매긴다. 국가 간 비교를 위해 '갤럽월드폴(Gallup World Poll)' 조사 결과를 활용한다.
갤럽월드폴 조사가 매년 진행되지 않는 나라도 있어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단년도 자료가 아닌 3개년도의 평균값으로 국제 비교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삶의 만족도는 2020∼2022년에 5.95점으로 OECD 회원국 38개국 중에 35위였다.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튀르키예(4.6점), 콜롬비아(5.6점), 그리스(5.9점) 단 세 나라에 불과하다. 지옥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은 웬만한 국가 가운데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는 아닌 게 분명하다.
그런데 통계청 아래 통계계발원에서 펴낸 '국민 삶의 질 2023' 보고서에 나오는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실상은 조금 더 심각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22년 인구 10만 명당 25.2명에 이른다. 특히 남자의 자살률은 35.3명으로 여자(15.1명)와 비교해 2배 이상 높다. 2023년 9월 발행된 OECD의 건강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을 24.1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모든 자살이 삶의 만족도가 낮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대체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 자살률은 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사회통합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도 간주된다. 특히 사회의 불안정성이 커졌을 때 자살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회의 불안정성과 관련해 임금 수준을 살펴보자. 임금 수준은 일자리의 질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다.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지난 10여 년간 대체로 늘어났다. 다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오히려 벌어졌다. 2022년 기준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44.8% 정도인데 2010년 전후 47% 내외에서 낮아졌다. 같은 출발선에는 서지 못했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향한 대우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저임금근로자 비율도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저임금근로자란 전체 임금근로자 중 월임금 중간값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임금근로자의 비율을 말한다.
한국의 저임금근로자 비율은 2022년 기준 16.9%로 전년 대비 1.3%포인트 높아졌다. 국제 비교를 위해 2021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15.6%로 네덜란드, 프랑스, 일본, 스위스, 멕시코, 오스트리아보다 높았고 미국, 캐나다, 영국보다는 낮았다. 삶이 불안한 사람들의 비율이 주요국 가운데 높은 것이다.
만족하는 삶의 기반이 되는 축적된 재산의 규모를 나타내는 가구순자산도 2023년 크게 줄었다. 가구순자산이란 전체 가구의 평균자산에서 평균부채를 차감한 금액을 말한다. 2023년 가구순자산은 3억9018만 원으로 전년 대비 3316만 원 감소했다.
이런저런 지표들을 다 종합해 살펴봐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의 삶의 만족도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 대로 떨어져 세계 최저 기록을 '셀프 경신'한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만한 이벤트가 열린다. 오는 4월10일 지역의 대표자이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진행된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이겨 행정권력뿐 아니라 입법권력도 갖기 위해 각종 개발 공약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그 내용도 어마어마하다. 여의도의 800배가 넘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겠다고 하고 1천조 원에 가까운 돈이 드는 여러 장밋빛 공약을 잇달아 쏟아낸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이런 공약은 총선이 끝나면 '빌 공(空)자 공약'에 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비판이 많다. 물론 야당에서 내놓는 여러 공약 역시 선심성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투표할 때 인기에 영합하는 선심성 공약이나 '빌 공(空)자' 공약 말고 누가 우리의 삶이 좀 더 나아지게 할 정책이나 입법을 추진할 정당과 인물인지를 좀 더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 2020년 총선 당시 유권자들이 한 정당 후보자의 거리 유세를 지켜보는 모습. <연합뉴스>
헬조선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정치적 냉소나 맹목적 추종에서 벗어나 총선에서 후보자들의 경력과 공약, 비전과 철학을 꼼꼼히 따지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철학자 플라톤은 책 '국가'에서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에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일의 출발은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고 대의정치 구조 아래에서는 좀 더 나은 사람을 골라 투표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투표 양상을 보면 당 색깔만 보고 무조건 찍어주는 일이 많았다. 이제 그런 일은 그만해야 한다.
우리 삶의 질이 주요국 가운데 밑바닥에서 머무는 것을 놓고 언제까지 남 탓만 할 노릇은 아니다. 일단 투표부터라도 공을 들여서 해보자. 선거 공보물이 나오면 꼼꼼히 읽어보고 후보자들 관련 뉴스도 검색해보자.
흔히 말하는 것처럼 죽을 정도의 노력이 아니라 이 정도의 정성만으로도 우리 모두의 삶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 박창욱 정책경제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