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기업과 경쟁'서 자존심 구긴 롯데온, 박익진 첫해 '쿠팡 독주' 제동 특명

▲ 롯데온이 쿠팡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매년 1천억 엔의 적자를 내도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등) 주주로부터 보전 받는 기업과 경쟁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4년 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쿠팡이 급성장하면서 전통 유통업체를 위협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던 시기 나온 발언이라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신 회장이 이커머스에서 쿠팡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이커머스를 담당하는 롯데온의 현주소를 보면 신 회장의 발언은 다소 무색하게 여겨진다.
 
'적자 기업과 경쟁'서 자존심 구긴 롯데온, 박익진 첫해 '쿠팡 독주' 제동 특명

▲ 롯데온이 출범 4년을 바라보지만 이커머스업계에서 여전히 자리를 못 잡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사진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문제는 앞으로 상황도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롯데온이 쿠팡의 독주체제가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려면 매우 높은 산을 넘어야만 한다.

29일 비즈니스포스트 취재를 종합하면 롯데온은 현재 박익진 새 대표이사의 취임 이후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계열사 역량을 동원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롯데온이 1월부터 시작한 행사 ‘월간롯데’가 그 대표적 결과물이다. 월간롯데는 롯데온이 롯데그룹 계열사의 인기 상품을 최대 절반 할인한 가격에 선보이는 행사다.

1월에는 롯데시네마와 세븐일레븐, 롯데웰푸드만 참석했는데 2월에는 롯데호텔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헬스케어까지 합류하면서 점차 계열사 혜택을 늘리고 있다.

롯데온에 따르면 박 대표가 월간롯데 행사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취임 직후인 1월에는 거의 한 달 내내 롯데온 임원들에게 사업 현황을 보고받다가 2월부터 본격적으로 롯데그룹 계열사 대표들과 자주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온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계열사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롯데온 관계자는 “월간롯데 행사 때 계열사에서 놀랄 정도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상품들도 나왔다”며 “롯데그룹의 다양한 계열사가 롯데그룹의 자산인 만큼 이를 활용해 소비자 관심을 끌어내자는 쪽으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온이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롯데온은 2020년 4월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온의 출범을 위해 갖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신 회장이 이에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쿠팡을 견제하는 발언을 한 것도 롯데온을 향한 기대감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았다.

신 회장은 2020년 3월 인터뷰에서 “현재 낮은 수준의 디지털 투자 비중을 끌어올릴 것이다”며 “롯데마트와 롯데슈퍼 등에서 따로 하던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롯데온으로 통합한다”며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롯데온은 출시 초기부터 삐거덕했다. 서비스를 오픈하자마자 접속 장애가 발생하는 등 갖은 논란을 겪은 탓에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플랫폼이 맞는지 의문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서비스 초기의 논란은 플랫폼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미쳤다. 출시 초기라면 소비자들의 관심이 대대적으로 집중될 법도 하지만 고객들의 머리 속에서 롯데온이 사라진 것이다.

롯데그룹의 한 직원은 “초기 서비스에 실망해 떠난 고객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며 “처음부터 잘했더라면 쓰지 않아도 됐을 시간과 돈이 4배나 더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롯데온은 출시 4년을 바라보지만 이커머스 업계에서 점유율 3~5%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온이 시장에 자리를 잡지 못하는 사이 쿠팡의 시장 장악은 더욱 굳건해졌다.

롯데온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낸 영업손실만 해도 4925억 원이다. 같은 기간 거둔 매출 4942억 원과 비슷한 적자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보면 롯데온이 새로운 시도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낮은 인지도부터 극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롯데온만이 줄 수 있는 혜택을 강화해 소비자들에게 롯데온의 존재감을 심어줘야 한다.

롯데온이 지난해 말 가수 이효리씨를 홍보 모델로 섭외해 롯데온이라는 플랫폼의 존재를 부각하는데 주력한 것도 이런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롯데온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들의 주된 시각이다.
 
'적자 기업과 경쟁'서 자존심 구긴 롯데온, 박익진 첫해 '쿠팡 독주' 제동 특명

▲ 박익진 롯데온 대표. 


최근 1년 사이만 해도 롯데온과 비슷한 점유율을 가졌던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이 동남아시아 기반 이커머스 기업 큐텐에 흡수돼 시너지를 강화하고 있다. 쿠팡은 소매시장 성장률을 3배 상회하는 수준으로 매출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물론 롯데온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박익진 대표 전임자인 나영호 전 대표 시절에는 패션과 뷰티, 럭셔리, 키즈 등을 중심으로 버티컬커머스 기능을 강화하기도 했다.

롯데쇼핑이 영국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와 협력해 최신형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하는 데 조 단위 투자를 진행하는 것도 롯데온을 살려보자는 차원에서 나온 전략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의 빠른 변화를 감안할 때 롯데온의 노력이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질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상당하다. 오카도와 협력만 하더라도 투자가 다 끝나려면 2030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한국 시장에 치고 들어오는 것도 롯데온에게는 위협적 요인이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와 같은 중국산 초저가 플랫폼은 이미 이용자 수 기준으로 국내 2위 플랫폼의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롯데온 관계자는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를 상당히 줄이는 등 내부적으로는 고무적 성과도 적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며 “앞으로 2~3년 안에는 흑자를 내는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