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올해 국내외 대규모 해군 함정 사업 수주전에서 맞붙는다.
각국 해군이 도입을 준비하는 함정 프로젝트와 각종 유지·보수·정비(MRO)사업까지 더하면 그 규모가 100조 원이 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국내외 함정 사업 수주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사진은 HD현대중공업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 조감도. < HD현대중공업 >
29일 방산업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방위사업청이 지난 27일 심사를 통해 HD현대중공업의 해군사업 입찰자격을 유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국내 함정 건조 맞수인 두 기업의 경쟁이 달아오를 전망이다.
HD현대중공업은 소속 직원들이 2012년부터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의 함정 관련 자료를 촬영해 회사 내부망에 공유한 데 따른 제재 대상에 올라 있었다. 해당 행위에 가담한 직원 9명은 2023년 11월 유죄가 확정됐다.
이와 관련해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의 방위사업 입찰 참가 자격을 검토했는데, ‘행정지도’ 처분만 내렸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국내 방위사업 입찰 자격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방사청은 6개월에서 5년까지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할 수 있는데, 만약 5년 동안 입찰 자격이 제한됐다면 HD현대중공업은 국내 입찰 기회를 모두 상실할 수도 있었다.
HD현대중공업이 군사기밀 유출에 대한 면죄부를 받음에 따라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건조사업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이 입찰에 걸린 사업비는 총 7조8천억 원에 이른다.
반면 한화오션으로서는 맞수의 생환으로 차기 구축함 입찰 '무혈입성' 기회가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의 입찰자격을 둘러싼 문제 제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화오션 측은 최근 방사청 결정과 관련한 입장문을 통해 “HD현대중공업의 기밀 탈취는 방산 근간을 흔드는 중대 비위”라며 “재심의와 감사, 경찰의 엄중 수사를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군사기밀 유출에 HD현대중공업 쪽 임원이 개입했는지 여부다. 방사청은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임원급 인사가 해당 사실을 보고 받은 정황도 일부 포착되고 있다. 국방부 검찰단 사건기록을 보면 해당 사건에 연루돼 유죄가 확정된 직원 1명은 군사기밀 유출 관련 사실이 담긴 보고서에 부서장과 중역이 결재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HD현대중공업이 입찰자격을 얻는다 해도 군사기밀 유출에 따른 보안사고 감점을 적용 받는 것은 불리한 점이다.
다만 HD현대중공업은 자사가 한국형 차기 구축함의 기본설계를 맡았다는 점에서 향후 진행되는 사업의 입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은 기본설계에 3년이 소요됐다. 이는 통상적 기본설계 기간인 2년보다 1년 긴 것이다. 체계·장비 대부분을 국산화하기 때문에 연구개발 과제가 많고 체계 복잡성도 높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본설계 이후 과정인 상세 설계 업체가 달라지면 원점에서 학습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실제 방사청 출범 이래 기본설계를 완료한 업체가 상세 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맡아왔다”고 말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해외 방산 수주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캐나다, 폴란드, 필리핀 등 해군이 도입하려는 잠수함 프로젝트는 두 기업 모두 수주에 불을 켜고 있다. 캐나다는 8~12척(70조~80조 원), 폴란드는 2~3척(5조 원), 필리핀은 2척(3조 원)을 새로 도입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 한화오션이 건조 중인 장보고-III 배치-II 잠수함 모형. <한화오션>
두 기업은 각각 영국 방산기업 밥콕과 잠수함 분야에서 손을 잡고 동반 수주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밥콕은 잠수함에 탑재하는 무기취급 발사체계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지닌 곳인 데다 캐나다와 폴란드 등 해외 네트워크도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HD현대중공업은 또 국가 차원의 잠수함 수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한화오션 측과도 힘을 합치는 이른바 '팀 코리아' 구성도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에 대해 한화오션 측은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함정 유지·보수·정비 사업 역시 두 회사 모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야다. 특히 미국은 유지·보수·정비 시설이 부족해 우방국 민간업자에게 유지·보수·정비 업무를 위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최근 방한한 카를로스 델 토로 미국 해군성 장관을 만나 자신들의 함정 건조 능력과 유지·보수·정비 역량을 집중 설명하며 사업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