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요구에 복리비를 1000만원 가량 삭감하는 등 파격적인 방만경영 개선책을 제시했다. 한편으로 임금 인상으로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좌절된 거래소 직원들을 챙겼다. 이런 행보를 놓고 최 이사장이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위한 '어르고 달래기'라는 분석이다.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의 이중 플레이  
▲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KRX한국거래소 기자실에서 글로벌 빅7거래소로 도약하기 위한 '한국거래소 선진화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최 이사장, 독한 해결책으로 정부 눈 맞추기


최경수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출입 기자단 신년회에서 ‘방만 경영’의 꼬리표를 반드시 떼어내고 공공기관 지정 해제에 재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올해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되지 않은 것은 방만 경영이 주된 요인”이라며 “정부의 방만경영 해소 관련 가이드라인이 나왔으니 노사 간 협의를 거쳐 복지비를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이드라인을 잘 따르면 기획재정부도 거래소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재검토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췄다.


최 이사장은 이미 정부의 방만 경영 해결안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공공기관 정상화 워크숍에서 최 이사장은 확실한 방만 경영 개선안을 내놨다. 직원 1인당 복리후생비를 70% 삭감해 현재 1488만원에서 400만원 이하로 낮추고, 창사기념일과 근로자의 날에 지금하던 경조금(70만원)을 폐지하는 것이 개선안의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한국거래소는 고교 자녀 학자금 지원을 연간 400만원 한도에서 서울시 국·공립고 수준인 180만원 한도로 줄이고 직원과 가족 의료비 지원 혜택을 폐지하기로 했다. 또한 업무상 부상·사망한 경우는 물론 업무 외 사망 시에도 퇴직금을 가산해 지급하는 조항을 폐지키로 했다.


이 자리에서 최 이사장은 “교육비, 의료비, 과다한 특별휴가 등 8대 방만경영 개선안을 노조에 전달했다”며 “기획재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전체 공공기관 방만 순위 20위 안에 포함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습 임금 인상, 노조 달래기


그런데 파격적인 방만경영 해결책을 내놓기 나흘 전인 12월20일 한국거래소는 2013년 직원 보수를 평균 2.8% 인상했다. 해당 인상안은 지난해 1월부터 소급 적용돼 지난달 거래소 직원들은 월급 외에 지난해 한해 치 인상분을 챙겼다. 거래소 직원 평균 연봉이 1억1453만원(2013년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직원 1인당 320만원 가량을 더 가져간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임금 자체가 320만원 가량 늘면서 거래소 직원들은 올해 총 640만원을 더 받게 됐다.


최경수 이사장이 복리후생비를 대폭 낮춤과 동시에 임금을 인상함으로써 거래소 직원들의 실질 임금 감소폭은 360만원 가량이다. 최 이사장이 정부에 삭감하겠다고 밝힌 금액(1000만원)의 3분1 수준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이는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 해지 불발로 성난 노조를 달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복리후생비를 대폭 낮춰 정부의 눈높이에 맞추는 동시에 임금 인상으로 실제 감소폭을 줄인다는 복안이다.


지난 12월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한국거래소 등 38개 공공기관을 방만경영 중점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기대하던 거래소 직원들의 꿈은 또다시 수포로 돌아갔다.


정부의 ‘공공기관 지위 유지’ 결정에 대해 당시 거래소 노동조합은 강하게 반발햇다. 유흥렬 거래소 노조위원장은 “독점 사업구조가 해소됐고 정부 지분이 없는 거래소를 공공기관에 묶어두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라며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거래소, 왜 ‘공공기관’ 지정 해지를 요구하나


한국거래소 노조가 반발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거래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정부의 관리, 감독을 받게 된 2009년부터 거래소는 물론 금융투자업계에서 지정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당시 노조 역시 지정 철회를 요구하며 헌법소원이나 총파업을 예고했으나 이들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거래소 노조와 이사장들은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번번이 정부가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면서 내세운 근거는 독점 구조와 방만 경영이었다.


지난해에는 특히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대체거래소(ATS)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법령상 독점구조가 해소돼 그 어느 때보다 공공기관 지정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부는 방만 경영을 지정 이유로 들었다. 다만 정부는 지난달 거래소가 제출한 정상화 계획에 따라 방만 경영 개선 성과가 뚜렷하다고 판단되면 해제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공공기관은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해 소유권을 갖거나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을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및 기타 공공기관으로 구분해 지정하도록 돼 있다. 문제는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할 수 있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사실상 공공기관 지정 여부는 재정부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재량에 달려 있다.


이로 인해 거래소는 정부의 지분이 전혀 없음에도 6년째 공공기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민간기업인 거래소에 대해 정부가 '방만 경영'을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 지정 이후 이사장 등 주요 임원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지속된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목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