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KT&G가 과거 사외이사들에게 여행 목적이 짙어 보이는 해외 출장을 보내줬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외이사들의 도덕성 논란이 번지고 있다.

다음 사장 선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사외이사라는 점에서 백복인 KT&G 대표이사 사장의 후임자 선발을 놓고도 공정성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T&G 사외이사 도덕성 ‘흔들’, 차기 CEO 선임 과정 ‘공정성’ 논란 불붙나

▲ KT&G 새 사장 선발 절차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외이사들의 도덕성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은 서울 KT&G 영등포지사. <연합뉴스>


25일 KT&G는 입장자료를 통해 “보도에 언급된 일부 사례는 지난 2012년, 2014년 사안으로 현직 사외이사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KT&G가 거론한 일부 사례는 24일 저녁 몇몇 매체를 통해 보도된 KT&G 사외이사들의 해외 출장을 말한다.

이 매체들이 입수한 KT&G 내부 문건에 따르면 KT&G는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여행길이 막혔던 2020~2021년을 제외하면 2012년부터 매해 한차례씩 해외 출장을 갔다. 문제는 업무와 무관해 보이는 현지 관광 일정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KT&G는 사외이사들이 업무와 관련해 출장을 가는 것처럼 서류를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시간이 관광에 배정돼 있었다. 일부 사외이사들은 배우자를 동반해 여행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 배우자가 동석한 사례도 있었다.

KT&G는 논란이 된 사외이사들의 해외 출장과 관련해 모두 과거의 일일뿐 현재 사외이사로 재직하는 인사 가운데서는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KT&G 관계자는 “사외이사는 회사의 사업에 도움이 될 글로벌 인사이트 발굴을 위해 현지 시장과 생산시설 방문, 해외 전문가 미팅, 신사업 후보군 고찰 등을 목적으로 해외법인 뿐만 아니라 주요 시장을 대상으로 연 1회, 7일 이내로 해외 출장을 실시하고 있다"며 "비용은 항공권을 제외한 1인 평균 680만 원 수준으로 사내 규정을 준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지금까지 KT&G 사외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한 인사 역시 논란이 될 만한 해외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사외이사는 2018년 튀르키예와 그리스로 부부 동반 출장을 떠났으며 2022년에도 이집트 등을 배우자와 함께 다녀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외이사는 현재 주요 지방자치단체의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이 사외이사에게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했으나 회신을 받지 못했다.

사외이사들의 도덕성이 의심받게 된 상황은 KT&G를 곤혹스럽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KT&G는 현재 백복인 사장의 후임자 선발을 위한 차기 사장 선임 단계를 밟고 있는데 이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사외이사들이기 때문이다.

KT&G는 현재 사외 후보 14명, 사내 후보 10명 등 모두 24명을 차기 사장 후보군(롱리스트)으로 확정한 뒤 1월 말부터 가동될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 추천할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1차 숏리스트)를 추리고 있다.

롱리스트를 확정한 기구는 바로 KT&G 이사회 내 위원회인 지배구조위원회인데 이들은 모두 사외이사 5명으로만 구성돼 있다.

곧 꾸려질 사장후보추천위원회 역시 사외이사들로만 조직된다.

원래 정관에 따르면 현직 사장도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 들어갈 수 있지만 백복인 사장이 선임 절차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자는 취지에 따라 이 위원회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전원 사외이사 구성이 확정됐다.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1차 숏리스트)를 놓고 심층 심사를 거쳐 2월 중순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2차 숏리스트)를 다시 한 번 압축한 뒤 2월 말 최종 후보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사실상 사장 선임의 처음부터 마지막 과정까지 대부분의 절차가 사외이사의 손에서만 이뤄지는 셈인데 일부 사외이사들이 KT&G로부터 부적절한 해외 출장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떠오르면서 이들의 판단으로만 차기 사장을 선임하는 것은 향후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사외이사에게 사장 선임의 절대적 권한을 주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다는 주장은 KT&G와 포스코 등 소유분산기업에서 끊이지 않고 나온다. 소유분산기업이란 지분이 잘게 분산돼 확실하게 회사를 통제할 수 있는 대주주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을 말한다.

포스코 역시 최근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데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사외이사들이 다음 회장을 선발한다는 것 자체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다음 회장 선발을 놓고 후보들을 선발하고 있는 포스코 사외이사들은 지난해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과 함께 캐나다에서 이른바 '호화 이사회'를 열었다는 사실과 관련해 업무상 배임 또는 청탁 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있다.

포스코나 KT&G 모두 최고경영진의 행위를 엄격하게 감시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현직 최고경영자들이 자신의 연임에 도움을 얻기 위해 이들의 연임 여부를 결정짓는 사외이사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로 여겨진다.

애초 경영진이 사외이사를 선발할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외이사들을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KT&G의 지배구조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는 행동주의 표방 사모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 역시 “KT&G의 이사회에는 독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오고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