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부실 저축은행 잔영 아직도, 예금보험공사 미술품 경매장 가보니

▲ 제프 쿤스가 1983년부터 1993년까지 10년에 걸쳐 만든 ‘인케이스드-파이브 로우(Encased-Five Rows)’.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오와 열을 맞춘 30개의 투명한 케이스 안에 24개의 농구공과 6개의 축구공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첫 번째 줄에 배치된 6개의 농구공에는 NBA팀 시카고불스에서 마이클조던과 함께 활약했던 스카티 피펜의 사인이 담겼다.

언뜻 보면 농구공과 축구공을 단순히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예술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제프 쿤스가 1983년부터 1993년까지 무려 10년에 걸쳐 만든 ‘인케이스드-파이브 로우(Encased-Five Rows)’라는 작품이다.

제프 쿤스는 농구공과 축구공을 통해 1980년대 인종차별을 겪던 흑인들이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스포츠뿐이었다는 의미를 담아냈다.  

31일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추정가격만 16억 원에 이르며 제프 쿤스의 평형 시리즈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이 내년 1월7일까지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뮤지엄 웨이브에서 전시된다.

예금보험공사는 어떻게 제프 쿤스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것일까? 

사실 제프 쿤스의 작품은 프라임저축은행이 보유했던 미술품이다.

2011년 프라임저축은행을 포함해 다수의 저축은행이 부실경영으로 차례로 무너지자 예금보험공사가 이들 은행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은행에서 가지고 있던 미술품들을 발견했다. 제프 쿤스의 작품도 이때 확인된 미술품 중의 하나였다.

이후 예금보험공사는 경매 전문회사를 통해 미술품을 매각해왔고 매각대금은 부실저축은행에서 피해를 본 예금자에게 배당해왔다.

예금보험공사는 2023년 11월까지 모두 8016점의 미술품을 매각해서 240억 원가량을 회수했는데 이번 전시도 그동안 매각되지 못하던 작품들을 한데 모아 판매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됐다.

이들 작품은 내년 1월9일까지 온라인 경매를 추진하고 내년 1월10일부터 1월31일까지 개별구매도 진행한다.

전시 첫날인 23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민철 예금보험공사 회수기획부 팀장은 “미술품을 팔려고 노력하면서 시민들도 이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전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장] 부실 저축은행 잔영 아직도, 예금보험공사 미술품 경매장 가보니

▲ 뮤지엄 웨이브 1층 전시장에 놓여진 예금보험공사의 부실저축은행 소장 미술품. <비즈니스포스트>

예금보험공사는 이번에 모두 19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감정가로 모두 25억 원에 해당한다.

뮤지엄 웨이브 1층 전시장 입구에는 현대 설치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여성 미술가인 조안나 바스콘셀로스의 ‘슈가 베이비’(감정가 2700만 원)가 자리 잡고 있다.

한 갤러리에서 가지고 있던 작품이었으나 미래저축은행에 담보로 맡겼다가 채무를 갚지 못하면서 소유권이 넘어갔고 최종적으로 미래저축은행 파산재단에 속하게 된 미술품이다.

1층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조안나의 또 다른 작품인 ‘하이퍼 컨숨션’(감정가 3600만 원)과 ‘로미오’(감정가 3200만 원), ‘빅토리아’(감정가 4100만 원) 등을 볼 수 있다.

김민철 예금보험공사 자산매각팀장은 “조안나 바스콘셀로스의 작품 6점이 이번에 전시됐다”며 “올해 봄에 했던 디올 패션쇼 무대도 조안나가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향후에는 제프 쿤스의 작품보다도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부실 저축은행 잔영 아직도, 예금보험공사 미술품 경매장 가보니

▲ 뮤지엄 웨이브 3층 전시장에 놓여진 예금보험공사의 부실저축은행 소장 미술품. <비즈니스포스트>

미술관 3층으로 올라가면 이번 전시에서 가장 비싼 감정가의 작품인 제프 쿤스의 ‘인케이스드-파이브 로우’를 포함해 제프 쿤스의 다른 작품인 ‘카우’(감정가 5억 원)를 만날 수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부실저축은행 사태 이후 모두 3점의 제프 쿤스 작품을 보유하게 됐는데 그중 2점이 이번에 전시된 것이다. 나머지 1점은 ‘꽃의 언덕’이라는 작품으로 2014년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출품돼 21억1천만 원에 매각됐다.

예금보험공사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19점 이외에 남아 있는 25점의 작품(감정가 450만 원)도 모두 매각하고 그를 통해 확보한 자금 모두를 부실저축은행 피해 예금자에게 돌려준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김민철 팀장은 “최대한 환가를 해서 부실저축은행 피해 예금자에게 배당을 하겠다”며 “가격이 비싼 작품들은 이번 전시가 마지막이지만 내년까지는 모든 미술품을 완판하는 것이 목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예금보험공사의 부실저축은행 보유 미술품 전시는 ‘크리스마스 스페셜-마음을 잇다’라는 주제로 뮤지엄 웨이브에서 내년 1월7일까지 진행된다. 입장료는 무료다. 조승리 기자
[현장] 부실 저축은행 잔영 아직도, 예금보험공사 미술품 경매장 가보니

▲ 예금보험공사의 부실저축은행 보유 미술품 전시는 ‘크리스마스 스페셜-마음을 잇다’라는 주제로 뮤지엄 웨이브에서 내년 1월7일까지 진행된다. <비즈니스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