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강국 재건’에 인력난 변수, TSMC 미국공장 지연 사례 재현되나

▲ 히가시 데쓰로 라피더스 회장이 지난 2월2일 일본 도쿄에 위치한 라피더스 본사 사옥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가 반도체강국을 재건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전문 인력 부족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대만 TSMC를 일본 내에 유치하면서 동시에 일본 반도체기업인 라피더스를 함께 육성하려다 보니 인력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짓고 있는 공장도 반도체 인력난으로 건설과 제품 생산 일정이 지연된 적이 있는데 일본에서도 같은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8일(현지시각)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일본에서 2023년 반도체 전문 엔지니어 인력의 수요가 10년 전인 2013년과 비교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TSMC와 라피더스가 각각 생산설비를 준비하고 있는 규슈 및 홋카이도 지역을 중심으로 반도체 인력 수요가 급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 채용업체 리크루트 홀딩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규슈 지역의 반도체 엔지니어 수요는 2017년과 비교해 5.2배 늘었다. 훗카이도에서는 5.4배가 증가했다. 

디지타임스는 “일본의 반도체 인력 수요가 크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짚었다.
 
TSMC와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 강국을 재건하는 목적으로 대규모 보조금을 쏟아 붓는 기업들이다. 

TSMC는 소니와 덴소 등 일본 기업과 JASM이라는 합작법인을 세우고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나서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앞세우자 제2공장 건설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4년 2월에 준공이 예정된 제1공장 그리고 검토 단계인 제2공장에 각각 4760억 엔(약 4조3266억 원)과 9천억 엔(약 8조1806억 원)을 투자할 방침을 세웠다. 
  
라피더스에도 3천억 엔(약 2조7307억 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이 거론되고 있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가 직접 출자에 나섰던 기업이다. 일본 정부가 소니와 소프트뱅크, 토요타 등 기업들과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했다. 
 
일본 ‘반도체 강국 재건’에 인력난 변수, TSMC 미국공장 지연 사례 재현되나

▲ 2023년 9월 TSMC의 공식 링크드인 계정에 공개된 애리조나주 파운드리 건설 현황. < TSMC >

일본 정부가 TSMC와 라피더스 두 곳에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부어 반도체 기술을 육성한다는 ‘투트랙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닛케이아시아의 11월9일자 보도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2조 엔(약 18조2044억 원)의 추가 예산을 편성해 TSMC와 라피더스를 중점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조금에 힘입어 생산설비를 건설할 자금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일할 사람이 부족하면 건설 일정이나 차후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디지타임스는 “TSMC가 2021년 규슈지역 구마모토현에 새 공장을 발표하고 라피더스가 2022년 설립되면서 인력 수요가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반도체 엔지니어가 부족한 가운데 라피더스는 나이가 60대인 전문가들까지 영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도체 설비는 건설 과정에서부터 전문 기술자의 투입이 필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 제조장비를 설치하고 시험 가동하는 과정을 비숙련 노동자가 수행하기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도체 전문 인력이 부족해 생산설비 건설과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은 사례가 실제로 있다. TSMC가 2024년을 목표로 미국 애리조나주에 짓고 있던 4나노(㎚, 1나노는 10억 분의 1) 파운드리 공장이다.

미국 현지에 반도체 관련 전문 인력이 부족해 대만에서 기술자를 직접 데려오려다 보니 공기가 늘어난 것이다.

TSMC는 결국 애리조나주 공장을 완공해서 4나노 제품 생산을 시작하는 시점을 2025년으로 1년 미뤘다. 애리조나주에 같이 건설되는 3나노 공장은 원래 계획대로 2026년부터 제품 양산에 들어간다. 

블룸버그의 7월20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TSMC의 류더인 회장은 같은 날 열린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첨단 장비를 설치할 만큼 숙련된 인력이 충분치 않아 기존에 목표했던 일정이 미뤄졌다”며 “대만에서 미국으로 기술자를 불러와 미국 현지 인력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직접 언급했다.

일본이 반도체 제조 기업을 동시에 다수 육성하려다 인력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TSMC의 애리조나 공장에서 제품 생산 일정이 늦어졌던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 

디지타임스는 “일본 내 반도체 엔지니어 수요가 임계점에 이르렀다”고 보도하며 인력 부족 문제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대만 기업인 TSMC가 미국과 일본에 생산설비를 세우는 작업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대만에서부터의 물리적인 거리가 크게 차이나고 노동 문화가 다를 수 있다는 이유다. 

TSMC의 일본 제1공장 준공 시기인 2024년 2월은 당초 계획보다 다소 앞당겨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