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위험에 처한 기업을 회생시키는 법을 안다.”
박익진 롯데쇼핑 이커머스사업부장(롯데온 대표) 내정자가 자신의 비즈니스 네트워킹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링크드인에 자신을 소개했던 글 가운데 일부다.
▲ 박익진 롯데쇼핑 이커머스사업부장(롯데온 대표) 내정자(사진)이 앞으로 롯데온을 이끌며 헤처나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
소개글만 보면 롯데온은 박 내정자의 역량을 펼치기 적합한 회사일 수 있다. 롯데온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이커머스임에도 불구하고 출범 4년을 바라보는 현재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박 내정자가 내년에 롯데온의 심폐소생을 위해 어떤 묘수를 꺼내들지 주목된다.
14일 롯데온에 따르면 박 내정자는 내년 1월2일부터 본격적으로 롯데온 업무를 시작한다. 최근 인사를 통해 롯데온 수장으로 선임됐지만 내년 1월1일자 발령이다.
롯데온 관계자는 “박 내정자는 아직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기업 현황과 관련한 보고 등도 준비 중이며 출근 이후에 본격적인 업무 파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내정자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이커머스 업계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업계의 분위기를 보면 박 내정자가 이커머스 업계에 직접 몸담은 적 없는 ‘이커머스 문외한’이라는 점에서 롯데온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박 내정자는 우선 물리학도 출신이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매사추세스공과대학교(MIT)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기도 했다.
다만 그는 전공으로 경력을 쌓지 않았다. 2000년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맥킨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프로젝트매니저로 4년을 일한 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씨티은행에서 카드사업본부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맡았다.
2006년 다시 맥킨지로 복귀해 부파트너로 2011년까지 일했으며 이후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전략담당 전무, ING생명 마케팅본부장 부사장, 롯데카드 마케팅디지털 부사장 등을 거쳤다.
2021년부터 최근까지는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서 운영 총괄 책임자(오퍼레이션 총괄헤드)로 일했다.
박 내정자가 이커머스와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롯데온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적임자인지를 놓고 업계의 의견이 갈린다.
물론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박 내정자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다. 박 내정자는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서 일할 때 이커머스 업계에 많은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진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요기요와 SSG닷컴 등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박 내정자가 평소 이커머스 업계를 공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커머스 업계와 접점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롯데온 관계자도 “외부인의 시선에서 롯데온을 새롭게 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롯데온 수장으로서 성과를 내기 위해 걸어야 할 길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외부에서 조언하던 역할과 달리 실제 업무를 실행하는 조직의 대표는 역할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마트와 SSG닷컴의 구원투수로 영입됐던 강희석 전 사장도 외부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에게 눈도장을 받아 직접 회사를 이끌어봤지만 약 4년 동안의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아 지난 9월 물러났다.
롯데온의 위기는 출범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이커머스 시장 장악을 위해 수천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출범 직후부터 이커머스 시장에서 힘을 제대로 써보지 못했다.
롯데온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통상 3%대 안팎으로 추정된다. 쿠팡과 네이버, SSG닷컴-G마켓 연합, 큐텐 연합(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 덩치가 큰 회사들과 비교해 점유율이 미미하다.
▲ 롯데온은 가수 이효리씨가 출연한 광고를 통해 매출 확대와 월간사용자수 사상 최대 등 긍정적 효과를 봤다. 사진은 이효리씨가 출연한 롯데온 광고 영상 모습. <롯데온> |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 구도가 이런 주요 사업자들로 서서히 압축되는 상황에서 롯데온이 상황을 180도 반전할 만한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기회가 없지만은 않다. 박 내정자의 전임자인 나영호 전 롯데온 대표가 만든 긍정적 변화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나 전 대표는 백화점이 각 층별로 카테고리를 세분화해 소비자를 공략하는 것에 착안해 롯데온을 뷰티와 명품, 패션, 키즈 등 각 카테고리 전문몰로 바꾸는데 시간을 들였다. 그 결과 올해 1~3분기 각 버터컬 전문과의 총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9% 늘었다.
롯데온 플랫폼 안에서 각 카테고리 전문몰이 차지하는 거래액 비중은 3분기 기준 32.7%로 지난해 3분기보다 5.4%포인트 늘었다.
거래액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손익 구조가 안정화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표다. 롯데온은 1~3분기 영업손실 640억 원을 냈는데 이는 2022년 1~3분기 적자의 절반 수준이다.
‘이효리 마케팅’도 성과를 내고 있다. 롯데온은 10월부터 광고계 퀸카로 불려온 가수 이효리씨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는데 이후 매출이 가파르게 증가했으며 월간사용자수도 사상 최고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된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