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전기차 '차포' 떼고도 미국서 질주, 테슬라 추격 위한 '충전' 순조

▲ 내년 하반기 완공이 예상되는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HMGMA) 조감도. <현대차그룹>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라인업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차포'를 뗀 경쟁 상황에 놓였지만 올해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오히려 크게 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하반기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을 완공하며 IRA로 인해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던 1천만 원 가까운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을 길이 열리게 된다.

더욱이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관련 투자 속도조절에 나선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투자 계획을 예정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투자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2025년부터 현지 전기차 생산체제 구축과 함께 선두 테슬라를 본격 추격할 기회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8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1~11월 미국에서 모두 8만4690대의 전기차를 팔아 IRA 영향을 받지 않았던 전년 동기(5만3663대) 보다 판매량이 57.8% 늘었다. 올해 들어 11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작년 연간 미국 전기차 판매량(5만8028대)을 2만7천 대가량 넘어섰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올해 미국 누적 전기차 판매에서 미국 전체 전기차 시장 1~9월 성장률인 48.7%를 훌쩍 뛰어넘는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경쟁사와 달리 올해 1천만 원가까운 구매보조금 없이 판매경쟁을 벌인 것을 고려하면 IRA 시행에 따른 판매 위기를 성공적으로 돌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8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980만 원)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는 IRA이 시행됐다. 

대부분의 전기차를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라인업은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특히 법 발효시점부터 인도에 걸리는 시차를 고려할 때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IRA 시행의 본격적인 영향권에 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전기차 판매 상위 5개 업체 가운데 IRA에 따른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IRA의 파고 속에서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 미국 전기차 판매 순위도 끌어올렸다.

미국 자동차 전문 평가기관 켈리블루북(KBB) 통계를 보면 올해 1~3분기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제네시스)은 미국에서 7.8% 점유율로 미국 전기차 판매 2위에 올랐다. 2022년에는 1년 동안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7.1% 점유율로 테슬라와 포드에 이어 3위를 기록한 바 있다.

올해 1~3분기 미국 전기차 판매 1위는 과반의 점유율(56.5%)을 보인 테슬라가 차지했다. 다만 현지 전기차 경쟁이 심화하면서 올 1분기 62%였던 테슬라의 현지 전기차시장점유율은 3분기 50%로 역대 분기 최저치를 기록했다.

현대차에 이어 3위권을 형성한 제너럴모터스(GM, 쉐보레·캐딜락·GMC)는 6.4%, 독일 폭스바겐그룹(폭스바겐·아우디·포르쉐)은 5.7%, 포드는 5.3%로 현지 점유율이 5~7%대에 머물렀다.

경쟁업체와 상대가격이 1천만 원 가까이 벌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현대차와 기아는 오히려 점유율을 늘린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전기차 생산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난 1년 동안 IRA 대응 단기 전략을 가동해 이 같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 IRA에 관계없이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리스와 플릿(자동차를 법인, 렌터카, 중고차업체 등 대상으로 대량 판매하는 것) 등 상업용 판매 채널을 대폭 늘렸다. 

또 일반 소매 판매에선 전기차 모델에 따라 IRA 보조금에 필적하는 수준의 자체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수익성을 일정부분 양보하더라도 판매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단기 대응과 별도로 현대차그룹은 IRA 시행 직후부터 애초 2025년으로 예정됐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HMGMA) 완공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왔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내년 하반기 HMGMA 가동을 시작하며 IRA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전기차 모델이 하나둘 늘려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최근 글로벌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수요 둔화 조짐에 관련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기존에 잡아 둔 투자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다.

HMGMA가 가동을 본격화하는 2025년이면 뚝심 있는 투자도 결실을 맺으며 미국에서 '난공불락' 테슬라를 추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CNBC등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GM은 올 10월 2024년 중반까지 북미에서 전기차 40만 대를 판매하고 올해 하반기 전기차 10만 대를 생산한다는 단기 목표를 철회했다. 

지난해부터 혼다와 함께 추진한 50억 달러(약 6조5천억 원) 규모의 보급형 소형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도 전면 취소했다. 이에 앞서 GM은 미시간주에 있는 전기트럭 공장 가동 시점도 최소 1년 연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GM, 스텔란티스와 함께 미국 '빅3' 완성차업체로 꼽히는 포드 역시 전체 전기차 투자규모 150억 달러(약 20조 원) 가운데 120억 달러(약 16조 원)의 전기차 투자 지출을 연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SK온과 합작해 2026년 가동하기로 했던 켄터키주 배터리2공장 가동 시점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폭스바겐그룹도 최근 동유럽에서 추진해 온 네번째 배터리 생산공장 설립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또 독일 볼프스부르크 바르메나우 공장 설립 계획도 취소했다. 

지난해 3월 폭스바겐그룹은 이 공장에 20억 유로(약 2조8천억 원)를 투입해 2026년부터 차세대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폭스바겐그룹은 그대신 볼프스부르크에 있던 기존 공장 증설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차포' 떼고도 미국서 질주, 테슬라 추격 위한 '충전' 순조

▲ 올 4분기 미국에서 본격 판매를 시작하는 기아 EV9. <기아>

반면 현대차그룹은 연산 30만 대 규모의 HMGMA 가동 시점을 앞당기는 가운데 올해 4월에 SK온과, 5월엔 LG에너지솔루션과 북미 배터리셀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SK온과 6조5천억 원, LG에너지솔루션과는 5조7천억 원을 공동투자해 지분을 절반씩 보유하고 각각 전기차 30만 대 분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합작공장을 조지아주에 건설하기로 했다.

합작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셀은 현대모비스가 배터리팩으로 제작해 HMGMA,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 등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전량 공급된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신차 출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에만 기아는 EV3와 EV4를, 현대차는 캐스퍼 전기차와 아이오닉7을 내놓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 공략에 나선다. 특히 기아는 2027년까지 15종의 전기차 풀라인업을 구축하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워뒀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모델들은 최근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미국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고 출시 모델이 다양화하면 빠른 시간 내 현지 판매 확대로 이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최근 켈리블루북이 선정하는 '2024 베스트 바이 어워드'에서 아이오닉5가 최고의 전기차에, EV9이 최고의 3열 전기차에 각각 올랐다. 켈리블루북은 미국 소비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평가 매체 중 하나로 꼽힌다. 

기아의 플래그십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EV9는 올 4분기부터 미국에서 본격 판매를 시작한다.

미국 자동차 전문 웹사이트 에드먼즈가 100마일의 추가 주행거리를 확보하는 데 걸리는 충전시간을 비교평가한 결과에서도 아이오닉6 2륜구동 모델이 1위, EV6 후륜구동 모델이 2위, 아이오닉6 4륜구동 모델이 3위, GV6 GT-라인이 5위에 오르는 등 상위권을 휩쓸었다.

아이오닉5와 EV9은 미국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라이버 에디터들이 11만 달러 미만의 SUV, 트럭, 밴 등 차량을 2주간 시승한 뒤 뽑은 2023 베스트10 트럭 & SUV에도 이름을 올렸다.

여전히 전기차 전문업체인 테슬라가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전기차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현지 전기차 생산체제 구축과 현재의 뚝심있는 투자가 1~2년 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테슬라, GM, 폭스바겐, 포드 등 현재 전기차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선 업체들은 단기적 수요 둔화를 핑계 삼아 현실적 숫자로 기존의 공격적 목표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며 "현재의 전기차 투자는 약 2년 뒤의 공급에 영향을 주는데 올해 하반기에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는 지가 2025년 전기차 비중 및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