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내 역할은 직원들이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직장인은 대개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낸다. 일하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쿠팡은 이론의 여지 없이 2023년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유통업체다. 쿠팡은 신세계, 롯데 등 소위 ‘유통 공룡’들을 누르고 2023년 1분기부터 3분기 연속 매출기준 국내 유통업체 1위를 지켜냈다.
사실상 2023년 전체 기준으로도 유통업계 매출기준 1위가 확실시 되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동안 계속해서 나던 영업적자도 흑자로 돌려세웠다.
쿠팡은 2021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며 공식적으로 ‘대기업’이 됐다. 로켓배송이 시작된 2014년부터 하면 7년, 쿠팡이 아직 소셜커머스의 모습을 띄고 있을 때부터 치더라도 10년 만에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이 된 것이다.
마블 코믹스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좌우명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다. 쿠팡의 힘이 이렇게 커졌으니, 당연히 책임의 크기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책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것을 뽑자면 바로 좋은 의미의 ‘내 식구 챙기기’다. 업무강도, 휴식, 급여, 복지, 기타 등등 모든 면에서 일단 우리 회사에 다니는 내 직원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기업이 사회적책임을 다하는 첫걸음이다.
김범석 의장이 2013년 인터뷰에서 직접 말했던 것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쿠팡은 과연 대기업이 된 지금, 김 의장이 2013년에 했던 이야기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최근 발생한 쿠팡 로켓프레시 배달원의 사망사고를 비롯해,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나 쿠팡맨의 사망사고는 지금까지 여러차례 발생해왔다. 또 사망사고와 별개로, 쿠팡 물류센터 등의 업무 강도가 너무 강하다는 우려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혹자는 이런 일과 관련해서
김범석 의장이 참고했다고 알려진 아마존의 사업모델 자체의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쿠팡은 단순한 유통기업이 아니라, IT기업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 있고, 자동화시스템도 워낙 잘돼있다 보니 일을 할 때 노동자의 숙련도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노동자의 숙련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굳이 요구조건을 맞춰줘가며 숙련노동자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고, 그 말은 노동자를 교체하는 데 따른 부담이 매우 적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에서 완벽한 ‘갑’이 된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도 아마존의 노동 실태와 관련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아마존의 한 노동자는 의회 청문회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주지 않아 페트병에 소변을 봤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는 마치 20세기 초 미국의 노동현실을 꼬집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종진 선임연구위원은 MBC와 인터뷰에서 “19세기 산업혁명 초기처럼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환경이 지금 우리 사회에 맞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쿠팡의 노동환경과 아마존의 노동환경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애초에 쿠팡이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네카라쿠배’라는 단어는 개발자들이 가고 싶어하는 기업들을 묶어놓은 데서 탄생했다.
김범석 의장이 말했던 것처럼 ‘쿠팡’의 직원들은 일하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통하는 것은 쿠팡이 스타트업일 때까지의 이야기다. 쿠팡은 더 이상 쿠팡 혼자서만 존재하는 기업이 아니다. 여러 거래처들이 있고, 여러 협력업체들이 있다. 그리고 대기업이라면 어느정도 소위 ‘하청업체’들의 노동환경도 돌아봐야 할 의무가 있다.
쿠팡은 사망사고가 발생한 당일인 10월13일 뉴스룸 ‘알려드립니다’ 코너를 통해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닌 군포시 소재 전문배송 업체 A물산 소속의 개인사업자”라며 “현재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쿠팡 근로자가 아님에도 택배노조는 마치 당사 소속 배송기사가 과로사한 것처럼 허위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 자체는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그리고 사회가 쿠팡에게 바라는 것은 이런 말이 아니다. 쿠팡은 이제 ‘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맨 앞에서
김범석 의장의 인터뷰로 영상을 시작했다. 여기에 또 다른 김 의장의 발언이 있다. 역시 국내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벤처라 하면 아이디어, 창업, 도전 등을 떠올린다. 틀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많은 후배들이 ‘벤처는 나 혼자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발명가다. 창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을 이끌고 즐겨야 한다.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80%, 비즈니스가 20%여야 한다. 벤처는 아이디어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쿠팡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김범석 의장의 물류에 대한 기막힌 통찰을 바탕으로 성공한 기업이다. 김 의장이 말한 것 가운데 20%는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쿠팡 나름대로, 김 의장 나름대로 나머지 80%라는 ‘사람’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80%가 법적으로 ‘쿠팡’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만이 아니라, 쿠팡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필 수 있는 경영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