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재 기자 rsj111@businesspost.co.kr2023-11-17 14:02:41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는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두고 2대 주주였던 쉰들러홀딩스와 분쟁을 지속해왔다. 현 회장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자산운용업계에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온 만큼 우호 세력 확보를 위해 지배구조 개선을 비롯해 주주가치 제고 등 요구사항을 들어준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17일 현대엘리베이터는 회계연도 2023~2027년 주주환원 정책과 이사회 운영정책을 발표하며 12월29일 임시주주총회를 연다고 이날 밝혔다.
현 회장은 이날 열린 현대엘리베이터 임시이사회에서 “최근 사회 전반에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에 대한 인식과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현대엘리베이터도 업계 선도기업으로 이사회 중심 경영이라는 핵심가치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며 “현대엘리베이터 등기이사직 및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날 공시를 통해 주주환원정책과 이사회 운영정책에 관한 수시의무공시를 냈다.
구체적으로 보면 △당기순이익(일회성 이익 제외한 경상적 이익)의 50% 이상 현금배당 또는 자기주식 취득 △일회성 이익의 일정 비율 현금배당 또는 자기주식 취득·소각 △최저 배당금 500원 설정 등이다.
이사회 운영정책도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검증 전 외부 기관의 검증 과정을 추가하고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 가운데 뽑기로 했다. 또한 주식매수선택권 부여를 통해 성과평가 연동제를 도입하고 내부거래위원회, 리스크관리 위원회도 이사회 내 신설하기로 했다.
현정은 회장이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환원정책을 펼치는 이유로는 우호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공고히 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현 회장이 국내 자산운용업계와 적극적으로 접촉을 하며 자금마련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앞서 4월 M캐피탈에 자신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보유한 지분 7.83%, 현대네트워크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0.61%을 담보로 2300억 원(이자율 12%)을 빌려 기존 주식담보대출을 상환하고 잔여 배상금을 지급했다.
7월 현 회장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7.83%를 현대네트워크(현 현대홀딩스컴퍼니)에 1580억 원에 매각했고 현대네트워크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9.26%를 확보하게 됐다. 현대네트워크는 지난 8월1일 인적분할을 통해 현대홀딩스컴퍼니(투자회사)와 현대네트워크(사업회사)로 쪼개졌다.
이후 8월 현 회장은 어머니 김문희 용문학원 명예이사장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5.74%를 전량 넘겨받았다.
이후 현 회장은 H&Q코리아와 손을 잡았다. H&Q코리아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19.26%를 보유해 경영권을 쥐고 있는 현대홀딩스컴퍼니에 31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앞으로 특수목적법인(SPC) 메트로폴리탄을 설립해 50%가량 지분율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현대홀딩스컴퍼니가 발행하는 전환사채, 교환사채, 상환전환우선주를 인수한다. H&Q코리아의 투자로 현 회장은 M캐피탈에 빌린 대출을 상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H&Q코리아는 투자를 계기로 현대홀딩스컴퍼니,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에 이사를 파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은 배경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이미 현대엘리베이터 이사회는 8월 KCGI자산운용으로부터 공개주주서한을 받기도 했다. KCGI자산운용은 지난 2분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공모펀드에 신규 편입하며 2%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KCGI자산운용측은 △현 회장과 이사회 분리를 통해 합리적 지배구조 확립 △이사회 내 보상위원회, 사회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사외이사로 변경 △사회이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자회사 최고경영자 추천위원회 설치 △수익성 개선방안 발표 △독립적 감사 선임 △임직원의 핵심성과지표 설정 및 보상체제 확립 등을 요구했다.
이날 현대엘리베이터가 발표한 이사회 운영정책에 이러한 요구사항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 회장이 이같은 결단을 통해 우호지분을 확보한 만큼 20년 넘게 경영권 분쟁을 이어온 쉰들러홀딩스와의 갈등도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쉰들러홀딩스는 2022년 3분기 말 기준으로 12.91%를 쥔 2대 주주다.
다국적 승강기 기업인 쉰들러홀딩스는 2006년 KCC가 현대엘리베이터 적대적 인수합병에 실패하자 지분 25.5%를 확보했다. 이후 현대엘리베이터는 자금 확보를 위해 유상증차를 수차례 실시했지만 쉰들러홀딩스는 유상증자가 현대그룹을 위한 결정이라며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쉰들러홀딩스 지분율은 꾸준히 하락했고 쉰들러홀딩스는 2014년 현 회장이 현대상선의 최대주주 현대엘리베이터로 하여금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맺게 해 7천억 원대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지난 3월30일 대법원은 쉰들러홀딩스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렸고 현 회장은 패소가 확정되자 2700억 원 안팎의 돈을 현대엘리베이터에 배상했다.
당시 현 회장은 1천억 원에 이르는 선수금을 지급한 상태였고 법원에 200억 원을 공탁했다. 추가로 현대엘리베이터 자회사 현대무벡스의 주식을 대물변제 하기로 했지만 추가로 600억~800억 원이 남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 회장이 자금마련에 나서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은 충북 충주에 위치한 현대엘리베이터 본사. <현대엘리베이터>
현정은 회장은 1955년 1월26일 서울에서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경기여중과 경기여고,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학교 대학원에서 인성개발학 석사학위도 받았다.
1976년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결혼했는데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 회장을 보고 다섯째 아들인 정몽헌 전 회장의 배필로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회장은 정몽헌 전 회장이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하자 현 회장이 남편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 회장에 올랐다.
현 회장은 대북사업과 관련해 7전8기의 오뚝이와 같은 뚝심있는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2009년 2박3일 일정으로 방북한 뒤 북한 체류일정을 연장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기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산가족 상봉, 백두산 관광, 군사분계선 육로 통행 등도 성사시켰다. 올해 정몽헌 전 회장 20주기 추모행사를 위해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하기도 했다.
한편 현대엘리베이터는 3분기 호실적을 거뒀다. 2023년 3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4843억 원, 영업이익 328억 원을 거뒀다. 2022년 3분기보다 매출은 14.5%, 영업이익은 66.7% 늘어난 것이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