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국내 철강업 구조조정을 앞두고 과잉생산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고 있다.

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철강 제품 과잉생산을 놓고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8월31일 태국 자동차강판 공장 준공식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철강업계는 틀림없는 공급과잉상태”라며 “포스코 설립 이후 고로회사가 하나 더 생기면서 국내도 철강 과잉생산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현대제철, 철강 구조조정 앞두고 과잉생산 책임 공방  
▲ 권오준 포스코 회장(왼쪽)과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권 회장이 언급한 ‘고로회사’는 현대제철을 두고 한 말이었다. 현대제철은 2009년부터 고로 가동에 들어가 현재 연간 2400만 톤의 쇳물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에서 고로를 생산하는 철강회사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단 두 곳뿐이다.

포스코가 국내 철강 과잉생산의 주범으로 현대제철을 지목하자 현대제철도 즉각 반박에 나섰다.

현대제철은 권 회장의 발언이 있었던 당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포스코의 대규모 설비증설이 과잉생산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현대제철은 “현대제철의 고로 생산으로 국내 과잉생산이 비롯됐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2004년 고로 진출을 발표할 때 한국은 연간 1063만 톤의 열연, 후판, 슬래브 등 철강소재를 수입하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생산능력 증대가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은 “현대제철이 고로 진출을 확정한 뒤 포스코가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483만 톤의 설비를 증설하면서 4237만 톤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했다”며 과잉생산의 책임을 포스코에 떠넘겼다.

국내 철강업계 양대 회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공급과잉을 놓고 벌인 날선 공방은 국내 철강업 구조조정 단행을 코 앞에 두고 벌어졌다.

정부는 9월 말 조선, 철강, 석유화학 관련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한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매출 상위 5개 철강회사와 한국철강협회로 구성된 민간협의회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의뢰해 구조조정 관련 보고서를 만들어왔다.


정부는 이 보고서를 9월 말 발표 예정인 철강업 종합지원대책의 지침으로 삼을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보고서는 8월 말 민간협의회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은 극비에 부쳐졌고 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철강사 임원진들에게만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중간보고서에 후판, 강관, 철근 등 3개 품목에 대해 큰 폭으로 설비를 감축해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철강사들은 중간보고서에 정부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며 크게 반발했다.

최종보고서에 설비감축 대상에서 후판과 철근이 제외되고 강관 관련 설비만 감축하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이 구조조정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설비를 감축하면 시장을 뺏길 것을 우려해 남들이 줄이면 자신들도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공급과잉 책임공방은 구조조정 보고서 협의과정에서 벌어졌던 신경전이 표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철강업 구조조정에서 설비감축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철강회사들이 민감해진 상태”라며 “공급과잉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보호무역주의로 반덤핑 관세나 중국산 철강의 저가공세 등 서로 힘을 모아야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정부가 나서 종합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