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카니발라이제이션이라는 경영학 용어가 있다. ‘동족 포식’이라는 뜻의 ‘카니발리즘’이라는 영어 단어에서 나온 용어인데, 어떤 기업이 신제품을 발매했을 때 그 기업의 기존 제품의 수익성, 매출 등을 그 신제품이 갉아먹는 현상을 뜻한다.

이 용어는 주로 한 기업의 여러 제품을 두고 쓰이는 말이지만 동종 업계 전체에게 바로 이 ‘카니발라이제이션’을 당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엔씨소프트다.

엔씨소프트는 말 그대로 ‘리니지 원툴’인 회사다.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 등 리니지 모바일 형제들은 엔씨소프트를 국내 최대의 게임 회사로 키워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리니지 3형제의 대성공을 보고, 이들의 성공방정식을 따라하는 게임들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면 사실상 출시되는 거의 모든 모바일 MMORPG(대규모다중접속온라인역할수행게임)들이 리니지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리니지 라이크’ 시대의 개막이다.

이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은 리니지 형제들의 매출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상 캐릭터 스킨과 배경 설정, 그래픽 등에서만 차이가 날 뿐 게임의 구성 방식은 거의 모든 게임들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가 웹젠의 R2M을 놓고 리니지를 따라했다며 제기했던 소송에서 승소하긴 했지만, 이미 리니지 라이크의 범람은 막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8월29일 구글 플레이스토어 기준 매출 1위~10위까지 게임 가운데 무려 9개가 리니지 라이크다. 

리니지 라이크가 점유할 수 있는 게임 시장의 크기가 한정적이라고 봤을 때 이렇게 매출이 많이 나오는 리니지 라이크가 많아졌다는 건 리니지 형제들이 먹을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업계 전체에 의해 ‘카니발라이제이션’ 당하고 있는 셈이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라이크 범람 현상에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은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다.

2023년 2분기 리니지W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4% 감소했고 리니지M의 매출 역시 같은 기간 9.5% 감소했다. 엔씨소프트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리니지가 흔들린다는 건, 엔씨소프트가 흔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가는 52주 신저가 정도가 아니라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실적 역시 좋지 못하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2분기에 지난해 2분기보다 무려 71% 감소한 수준의 영업이익을 냈다.

그렇다면 흔들리고 있는 엔씨소프트를 구해내기 위해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복안은 무엇일까?

첫 번째 방안은 2023년 12월 출시 예정인 쓰론앤리버티다. 

리니지의 이름만 쓰지 않았을 뿐 현재까지 공개된 사항들로 보면 쓰론앤리버티는 리니지 시리즈와 유사한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자동사냥 등의 시스템을 넣지 않겠다고 선언하긴 했지만 여전히 게이머들은 리니지 '쓰'(론앤)'리'(버티)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쓰론앤리버티는 여전히 엔씨소프트에게는 가장 가까이 있는 동앗줄이다. 게임업체에게 신작 출시는 언제나 위기를 빠르게 넘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김택진 대표가 쓰론앤리버티 홍보영상에 직접 등장할 정도로 엔씨소프트는 쓰론앤리버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똑같은 리니지 라이크가 또 나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게임회사로서의 정체성, 이미지 등을 일단 제쳐놓고 단순히 실적만 놓고 본다면 쓰론앤리버티가 리니지와 비슷하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엔씨소프트가 소위 '리니지 라이크'의 과실을 다른 회사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쓰론앤리버티가 '리니지 라이크'로, 하지만 압도적 게임성으로 무장한 리니지 라이크로 나온다면 그동안 빼앗겼던 리니지 라이크 점유율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리니지 라이크 게임은 수익성이 매우 좋기 때문에 게임회사가 실적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론앤리버티만 가지고 엔씨가 부활하기에는 소위 엔씨소프트의 '원죄'가 너무 깊다. 만약 쓰론앤리버티마저 진짜로 리니지 라이크로 나온다면 엔씨소프트를 바라보는 게이머들의 시선은 더욱더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만약 쓰론앤리버티가 매출 측면에서 흥행한다고 하더라도, ‘또 리니지’라는 생각을 사람들의 뇌리에 새기게 된다면 절대 그 동앗줄은 튼튼한 동앗줄이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두 번째 방안이 필요하다. 바로 프로젝트 M이다. 프로젝트M은 국내 게임개발사들의 거의 시도하지 않았던 인터랙티브 무비 형식의 게임이다.

인터랙티브 뮤비 게임은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줄거리를 따라가면서도, 스토리의 중요한 순간마다 유저가 직접 주인공의 행동을 결정해 스토리를 능동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게임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이 장르의 대표작이다.

이 장르는 유저가 직접 내린 결정에 따라 스토리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영화보다 훨씬 더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매우 마이너한 장르의 게임이기 때문에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금까지 게임의 작품성을 도외시하고 수익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임을 많이 만들어왔다.

그런 엔씨소프트가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지만 작품성은 매우 훌륭한 게임을 정말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엔씨소프트에게 새겨져있는 주홍글씨를 조금은 걷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계에서 그런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엔씨소프트의 경쟁사인 넥슨 역시 ‘돈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데이브 더 다이버’라는, 세계인들에게 작품성으로 인정받는 게임을 내놓으면서 어느 정도 게이머들에게 평가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엔씨소프트는 스스로도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CFO가 공식적으로 매출 하락세를 얘기하기도 했을 정도다.

과연 김택진 대표는, 그리고 엔씨소프트는 이 두 가지 방안을 통해 흔들리고 있는 회사를 굳건히 지지할 수 있게 될까? 엔씨소프트라는 이름이 더 이상 게이머들에게, 주주들에게 상처로 남지 않고, 오히려 ‘자랑’으로 남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