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회장이 7일(현지시각)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배터리셀 공장 'HLI그린파워'를 방문해 공정별 세부사항을 살피고 있다. <현대차그룹> |
[비즈니스포스트]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자동차시장에서 압도적 지위를 구축해 온 일본자동차 브랜드의 위상이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흔들리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완성차 기업들은 동남아 시장에서 전기차 시장 패권을 놓고 일본과 함께 새로운 삼국지를 써나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완성차업체들은 아직 초기 단계인 동남아시아 전기차시장을 선점하며 현지 전기차 생산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동남아 현지 최초 전기차 생산공장을 구축한 인도네시아를 전진 기지로 삼고 아세안 자동차 시장을 파고들 준비를 하고 있다.
18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일본차 텃밭'이라 불리는 아세안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과 한국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를 앞세워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분석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동남아시아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전기차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75%로 2022년 1분기 38%와 비교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동남아시아 전체 자동차시장에서 중국 완성차업체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에는 1% 미만이었으나 올해 들어 6%까지 수직상승했다.
특히 중국 전기차업체들은 올해 1분기 아세안 지역 전기차 판매량의 79%를 차지한 태국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태국은 동남아시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인도네시아에 이어 2번째로 자동차 내수 판매량이 많은 국가다.
태국 국토교통부(DLT)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태국 전기차(BEV) 브랜드별 점유율은 1위 MG 28.3%, 2위 BYD 21.2%, 3위 오라(ORA) 17.1%, 4위 테슬라 10.8%, 5위 네타(NETA) 9.2% 순으로 나타났다.
테슬라를 제외한 4곳이 모두 중국 업체로 이들의 합산 점유율은 75.8%에 이른다.
특히 태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올해 1분기에만 1만4535대로 이미 2022년 연간 전기차 판매량(9580대)을 넘어섰다.
이는 올해 초 중국이 전기차 보조금을 전면 폐지하면서 중국 전기차업체들은 잇달아 동남아시아 최대 전기차시장인 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BYD는 현재 태국 라용성 지역에 첫 해외 전기차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연산 15만 대 규모로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네타도 태국 방콕 카나야오 지역에 연산 2만대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2024년 초부터 본격 가동한다.
창안자동차도 4월 태국에 연산 10만 대 규모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98억 바트(약 3640억 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고 상하이자동차(SAIC)는 올해 말 양산을 목표로 태국 촌부리 지역에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구슬 코트라 방콕무역관은 "일본차 중심이었던 태국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변화하는 만큼 우리기업은 태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지역 전기차시장 공략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지금까지 한국차의 불모지로 남아있던 태국 자동차 시장을 본격 공략할 채비를 하고 있다.
기아는 최근 태국 현지에 연산 25만 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연내 태국 정부와 현지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할 것으로 전해진다. 차질없이 진행되면 내년 상반기에 공장 건설을 위한 첫삽을 뜰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는 올해 4월 태국에 첫 현지 법인인 '현대 모빌리티 타일랜드'를 세우고 직접 판매 및 사후서비스(A/S)를 시작했다. 일단 판매에 집중하면서 앞으로 현지에서 차를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인도네시아를 아세안 지역의 전진기지로 점찍고 있다.
현대차는 2022년 인도네시아 브카시에 연산 15만 대 규모의 첫 아세안지역 완성차 공장을 짓고 판매실적을 3만1965대로 2021년보다 10배 이상 크게 키웠다.
특히 현대차는 최초의 인도네시아산 전기차 아이오닉5를 앞세워 올해 들어 7월까지 현지 전기차 누적 판매에서 56.5%(3913대)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또 현대차는 올해 1~7월 인도네시아 내수 시장에 판매한 2만65대보다 50% 이상 많은 3만114대의 인도네시아산 현대차를 아세안 회원국 곳곳으로 수출했다.
2024년부터 인도네시아는 현대차그룹의 아세안 전기차 수출 거점으로도 본격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현대차그룹은 인도네시아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해 올해 6월 배터리셀 공장 'HLI그린파워'를 완공했다. 이 공장은 내년부터 배터리셀 양산을 시작하는데 이에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에 따라 부품 현지화율이 40% 이상인 때는 인도네시아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아세안 국가들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9년부터 현지에서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가 현지 부품과 인력 등을 활용해 현지화율 조건(2024년 기준 60%)을 만족하면 부품 수입 관세 및 사치세 면제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
현대차그룹은 또 다른 동남아 주요 자동차 시장인 베트남에서는 현지 생산체제를 바탕으로 이미 토요타를 밀어내고 판매 1위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현대차는 베트남 탄콩그룹과 생산 합작법인(HTMV)을 설립해 2017년과 2022년에 각각 1공장과 2공장을 설립했다. 기아도 2004년부터 현지에서 쯔엉하이자동차와 합작해 CKD(반조립)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현대차는 베트남 현지 생산 2년 만인 2019년 7만9568대를 판매하며 토요타(7만9328대)를 제치고 베트남 판매 1위에 오른 뒤 2021년까지 3년 연속으로 왕좌를 놓지 않았다.
2022년 연간 판매에서 8만1582대를 판매해 토요타에 9천여 대 차이로 1위를 내줬으나 기아와 합산 판매량은 1만42311대로 토요타를 압도했다.
현대차는 올해 7월 말 베트남 현지에서 생산한 아이오닉5를 판매시장에 투입하며 전기차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배터리셀 시제품이 생산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HLI그린파워를 직접 방문해 각 공정별 세부 사항을 살피며 아세안 전기차 시장 본격 공략에 앞서 신발끈을 단단히 맸다.
50여년 전 동남아시아 자동차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한 일본 완성차업체들은 현재 아세안 주요 자동차시장에서 80~90%를 넘나드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하이브리드차 중심의 친환경차 전략을 펼쳐 온 일본차 브랜드는 아직 현대차그룹이나 중국 전기차업체들과 겨룰 만한 전기차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판매량 1위 토요타가 지난해 6월 야심차게 내놓은 브랜드 첫 대량생산 전기차 bz4x는 출시 두 달도 되기 전에 부품 결함으로 리콜에 들어가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아세안 자동차시장은 앞으로 한중일 3국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아세안 권역 내 자사의 첫 번째 완성차 생산 거점인 인도네시아를 발판으로 아세안 시장 공략에 나서 현지 선도 브랜드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