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업계가 탄소를 줄이고자 대체 동력원으로 돛에 주목하고 있다. 대형 해운기업 '카길'과 '오드펠'은 각자 개발한 다른 방식의 돛을 실험하고 있다. 사진은 카길에서 개발한 '윈드윙'을 장비한 벌크선 '픽시스오션'. < BAR테크놀로지 유튜브 > |
[비즈니스포스트]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까지 해운업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해운업체들이 탄소배출을 줄이고자 배에 돛을 달고 있다.
각종 기술을 적용한 21세기형 대형 돛들은 적게는 10%, 많게는 51%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블룸버그 등 주요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카길(Cargill)’과 ‘오드펠(Odfjell)’ 등 대형 해운기업들은 풍력을 이용해 연료 사용을 절약하는 수단을 개발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식량 해운을 담당하고 있는 카길은 21일 바람의 힘을 사용하는 '윈드윙'을 장착한 벌크선 ‘픽시스오션’이 상하이부터 싱가포르까지 성공적으로 운항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픽시스오션은 미쓰비시 상사가 소유한 배수량 8만 톤이 넘는 대형선박으로, 이날 바로 덴마크부터 브라질까지 곡물을 운송하는 시범 항해에 나섰다. 윈드윙 장착 선박의 장거리 운항은 처음이라고 카길은 밝혔다.
윈드윙은 37.5미터 높이의 접이식 구조로 되어 있는 금속과 유리 복합소재로 제작한 돛이다. 선박이 정박할 때는 접어뒀다가 선박이 먼 바다로 나가면 펼쳐 선박의 보조 동력원으로 활용한다.
이 기술은 카길이 2020년부터 영국의 '비에이알(BAR)테크놀로지스'와 노르웨이의 '야라마린'과 협업해 개발하고 있다.
비에이의 설명에 따르면 윈드윙을 보조 동력으로 사용하면 하나당 연료 사용량을 10%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번에 시범항해에 나서는 픽시스오션은 윈드윙을 2개 장비해 연료 소모를 20% 가량 아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미쓰비시 상사 관계자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윈드윙 기술은 선박들이 완전히 넷제로로 전환한 뒤에도 사용할 만한 기술”이라며 “선박업 관계자들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윈드윙의 장점은 이미 운항하고 있는 선박을 개조해 장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길은 윈드윙을 장비한 선박을 앞으로 10척까지 늘릴 계획을 세웠다.
▲ 오드펠측이 내세운 '이세일'을 적용한 '후동' 유조선 그래픽 이미지. <오드펠 유튜브> |
화학물 유조선을 98척 보유한 오드펠은 15일 자사에서 운항하는 '후동' 유조선에 '이세일(eSAIL)'을 설치해 유조선 최초로 풍력을 이용한 보조 동력원을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이세일은 ‘흡입 돛(sunction sail)’이라고 불리는 기술이 적용된 장비다.
원리는 비행기가 날개 위아래에 발생하는 압력 차이를 이용해 양력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
흡입돛 즉 원통 형태의 합금 구조물을 선박의 모퉁이에 세우고 원통 안으로 바람을 빨아들이면 바깥과 내부 사이에 발생하는 압력 차이로 높은 추진력이 발생한다.
이세일을 설치하면 선박에 따라 연료를 최대 51%까지 절감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오드펠은 2014년부터 자사가 운용하는 선박에 130개가 넘는 이세일을 장착했다. 이를 통해 2023년 1분기에는 국제해사기구에서 정한 배출량 기준보다 50% 낮은 배출량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에릭 호틀란트 오드펠 기술부사장은 클린테크니카와 인터뷰에서 “이세일 기술은 오드펠의 탈탄소를 위한 의지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라며 “우리는 모두 오드펠 선박 배출량 감축을 위한 에너지 효율성 개선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카길과 오드펠 등이 내세운 '금속 돛'에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바람에 의존해 동력 수급이 불안정한 돛은 화석연료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보조동력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돛을 설치하기 위해 선박을 개조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것도 확산의 걸림돌로 지적됐다.
카길과 오드펠 측은 설치 비용은 선박을 운용하면서 아끼는 연료 비용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카길이 사용하는 윈드윙은 설치 후 7년에서 10년, 오드펠은 5년이면 설치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대체로 선박은 한 번 건조하면 수십 년 단위로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남는 장사인 셈이다.
실제로 한국 해군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건조한 구축함을 공여받아 60년 가까이 사용하기도 했다.
업계 일각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2050년 넷제로(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해운업계의 탈탄소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2020년 국제해사기구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해운업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연간 10억 톤이 넘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연간배출량 6억 톤보다 1.5배 많다.
화석연료 의존도도 매우 높아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운항하고 있는 선박이 사용하는 연료의 99.8%가 화석연료인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건조하고 있는 선박 98.0%도 재래식 연료와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의 화석연료 의존도는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반면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탄소배출 규제는 더욱 높아지고 있어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선박업체들의 노력을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개정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에 따라 2025년부터 유럽에서 물류 활동을 하는 모든 해운업체들을 대상으로 탄소배출량 40%만큼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도록 규제할 예정이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