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소형차들이 신흥시장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예전과 같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1세대 엑센트. <현대차> |
[비즈니스포스트] 베르나, 엑센트, 프라이드.
국내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현재는 볼 수 없는 소형차들이다. 이 소형차들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신흥시장에선 새로운 모습으로 여전히 질주하고 있다.
18일 현대차 해외공장별 판매실적을 보면 지난달 인도 첸나이 공장에서 생산된 베르나는 인도 현지에서 2858대, 수출로 5100대 등 모두 7958대가 판매됐다.
이는 7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승용차 그랜저의 월간판매량(8531대)에 버금가는 물량이다.
베르나는 국내에선 13년 전인 2010년 사라진 차다. 기억 속에 희미해진 추억의 차가 세계 3대 자동차 시장으로 올라선 인도에선 짱짱한 현역으로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일부 신흥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소형 세단 베르나의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을 올해 3월 인도에서 가장 먼저 출시했다.
신형 베르나는 인도에서 판매하는 모델 가운데 최초로 현대차의 최근 패밀리룩인 수평형 주간주행등(DRL)이 적용돼 근래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에게 잊혀졌지만 해외 시장에 팔리는 소형차로 엑센트도 있다. 엑센트는 베르나에 앞서 현대차가 내놓은 소형차다.
엑센트는 현대차가 1994년 출시한 소형 세단이다. 처음으로 디자인부터 섀시, 엔진, 변속기까지 모두 현대차 자체 기술력으로 만든 차이기도 하다.
곡선형의 귀여운 디자인에 다채로운 파스텔 톤 색상을 입은 엑센트는 '신세대 신감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당시 X세대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현대차가 자체 개발한 알파 엔진이 안정적 성능을 인정받으면서 엑센트는 당시 위세를 떨치던 기아 프라이드와 대우 르망을 밀어내고 국내 소형차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다졌다.
액센트는 1999년 후속 모델 베르나가 출시되면서 단종됐다. 대신 베르나의 해외 수출명이 엑센트가 되면서 모델 이름은 신흥시장에서 살아 남았다.
엑센트의 후속 베르나는 소형차임에도 주 고객층을 40대까지로 넓히고자 보수적이고 평범한 디자인으로 개발됐다.
베르나는 엑센트와 합산해 2001년 현대차 사상 처음으로 국내외 누적 판매 500만 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2005년 나온 완전변경 모델 베르나는 엑센트와 같은 둥글둥글한 디자인으로 돌아왔는데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기아 프라이드에 밀려 결국 2010년 단종되고 만다.
현대차는 단종된 베르나 대신에 새로운 엑센트 모델을 그해 11월 국내에 출시했다.
새로운 엑센트는 현대차의 새 디자인 언어를 반영해 준준형차 아반떼와 패밀리룩을 이뤘고 수출 전략모델로도 삼았다.
현대차는 새 액센트 디자인을 신흥국 현지 시장 선호에 맞춰 다듬고 중국에선 베르나, 러시아에선 쏠라리스란 이름으로 출시했다.
특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쏠라리스는 2011년 4월 출시 3달 만에 월간 수입차 판매 1위에 오른 뒤 2017년에는 러시아 전체 자동차 판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엑센트는 2016년 부터 중국, 러시아, 북미 등에서 완전변경 모델이 출시됐지만 국내에선 2019년 말을 끝으로 완전히 단종됐다.
기아의 대표 모델로 많은 국내 소비자들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프라이드도 현대차 엑센트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기아는 미국 포드, 일본 마쓰다와 합작해 1987년 1세대 프라이드를 국내에 출시했다.
마쓰다의 엔진과 플랫폼을 바탕으로 탄탄한 동력성능과 잔고장이 없는 높은 내구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세대 프라이드는 2000년까지 판매를 이어가며 국내에서만 70만 대가 넘는 판매실적을 올렸다.
1세대 프라이드의 후속모델로 1999년 등장한 리오는 기아가 독자개발한 모델이자 현대차에 인수된 뒤 새로 출시한 소형 세단이다. 출시 당시 곡선적이고 고급스런 인테리어로 주목을 받았다. 2002년 한차례 부분변경을 거친 뒤 2005년까지 1세대 모델이 판매되다 단종됐다.
이에 국내에서 프라이드가 같은 해 리오의 후속 모델로 부활하게 된다. 이름은 프라이드지만 기존 모델의 디자인에서 완전히 탈피했고 현대차 베르나와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했다. 해치백 모델도 판매됐지만 대부분 세단으로 팔렸다.
'뉴 프라이드'로도 불린 2세대 프라이드는 수출 모델에서는 리오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2011년 9월 출시된 3세대 프라이드는 유럽 전략형 해치백 UB(이하 프로젝트명)와 북미 전략형 세단 LB로 구분해 개발됐다. 국내에서 프라이드는 3세대 모델을 마지막으로 2017년 완전히 단종됐다.
하지만 해외에선 2016년 출시된 4세대 프라이드가 수출명 리오로 현재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올해 1~7월에도 국내에서 2만6784대를 생산해 수출했고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된 물량도 같은 기간 5만8701대의 판매실적 올렸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선 2019년 3월 한국GM 아베오에 이어 같은해 7월 엑센트가 단종되면서 소형세단이 완전히 사라졌다.
특히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한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2019년 국산 소형 세단은 모두 사라지고 공간활용성에 강점이 있는 소형 SUV만이 남았다.
이런 추세에는 국내 소비자의 성향뿐 아니라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변화한 자동차시장의 환경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추억의 소형차들은 이제 주변에서 보긴 힘들어졌지만 수요가 있는 글로벌 신흥시장 곳곳에서 여전히 질주하고 있다. 허원석 기자
▲ 현대차 베르나 완전변경 모델. <현대차 인도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