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지원법은 바이든 정치적 딜레마", TSMC 투자 지연에 비판 나와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8월9일 백악관에서 반도체 지원법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신설하는 반도체공장 가동 시기를 늦추기로 한 것은 바이든 정부의 정책적 딜레마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주도하는 상황이 노동자 권익을 앞세우는 정책적 기조와 상충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17일(현지시각) 미국 정치전문지 워싱턴이그재미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 ‘바이드노믹스’가 정치적인 문제로 계속해 걸림돌을 만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이그재미너는 바이든 정부의 산업 정책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과 닮아 있다고 분석했다.

자유무역보다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우며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 주요 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등 방식이 트럼프 정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 반도체 제조공장 또는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기업에 520억 달러(약 69조 원) 이상의 보조금과 추가 세제혜택을 제공하기로 한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TSMC는 미국 정부 지원을 노려 애리조나에 대규모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건설 계획을 확정했고 자연히 투자 비용 가운데 상당 부분을 보조금으로 받겠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워싱턴이그재미너는 TSMC가 바이든 정부의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지원을 원했고 미국 내 전문인력 부족으로 투자 계획을 추진하기 어려워지면서 단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고 바라봤다.

TSMC는 결국 인건비가 비교적 낮고 경험이 많은 대만 내 인력을 미국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으로 투입해 인프라 구축 작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로 앞세운 바이든 정부의 산업 지원 정책에 어긋난다.

대만 출신의 인력이 미국 현지 인력을 대체하는 데 관련해 노동자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워싱턴이그재미너는 미국 노동자들이 TSMC의 대만 인력 유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며 노조를 지지하는 정치적 성향을 띤 바이든 정부에 딜레마를 안기고 있다고 전했다.

TSMC의 반도체공장 건설이 미국 정부의 계획에 가깝게 진행되려면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대만 인력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TSMC는 인력 부족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가동 시기를 기존 2024년에서 2025년으로 늦추겠다고 밝혔다.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TSMC가 공장 투자에 더 속도를 내도록 하는 일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바이든 정부가 노동자의 권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적 기조를 포기하고 TSMC 반도체 생산공장 완공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할 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이그재미너는 정부가 특정 산업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 할 때 이러한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산업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이그재미너는 “미국의 산업 정책이 정치적 문제에 부딪히지 않고 순조롭게 이뤄지는 일은 비현실적”이라며 “바이든 정부는 이를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