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국내에서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크게 둔화하는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출시되는 전기차 신차들이 시장에 나온다. 사진은 KG모빌리티 토레스 EVX(왼쪽)와 기아 레이 EV.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전기차 구매를 망설여 온 국내 소비자들의 고민이 한결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반기부터 기존 국내 시판 전기차보다 한 단계 낮은 가격의 전기차 출시가 잇달아 예고돼 있어서다.
새로 출시되는 전기차 모델들은 기존에 국내에 들여오지 않던 값싼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가격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들어 국내에서는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크게 둔화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차 신차들이 이런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15일 KG모빌리티에 따르면 오는 9월 국내 판매 돌풍을 일으킨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토레스의 전기차 버전인 토레스 EVX를 국내에 출시한다.
중국 BYD의 73.4kWh(킬로와트시) LFP 배터리를 장착한 토레스 EVX는 최근 국내기준 복합 433km의 우수한 1회충전 주행거리를 인증받았다. 정부는 저온 주행거리가 상온의 70% 이상인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토레스 EVX는 저온에서도 복합 333km(77%)를 인증 받아 보조금 지급 대상에 들어간다.
시작가격은 기본트림 기준 4850만 원으로 국고 및 지자체 보조금 모두 받으면 3천만 원대에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도 9월 레이 EV 전기차를 국내에 다시 내놓는다. 앞서 기아는 2012년 구형 레이 EV를 국내에 출시한 적이 있지만 100km도 안되는 주행거리와 잦은 고장으로 2018년 단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출시되는 신형 레이 EV는 중국 CATL의 35.4kWh LFP 배터리를 달고 최근 국내에서 구형 모델보다 2배 이상 긴 복합 210km의 주행거리를 인증받았다. 저온 인증 복합 주행거리도 167km로 상온의 79.5% 수준이다. 가격은 3천만 원을 넘지 않아 보조금을 고려하면 2천만 원 초반대 구매가 가능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에서 LFP 배터리를 앞세운 가격 경쟁의 신호탄은 테슬라가 쐈다.
테슬라는 지난 7월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 모델Y 후륜구동(RWD) 모델을 국고 보조금 100%(680만 원) 지급 기준에 맞춘 가격(5699만 원)에 국내에 출시했다.
국내에 7874만 원에 판매돼 온 미국산 모델Y 4륜구동 롱레인지 모델의 판매는 일시 중단했는데 중국산 모델Y는 기존 삼원계 배터리를 LFP 배터리로 바꿔달고 기존 모델보다 가격을 2천만 원 넘게 내렸다.
다만 LFP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가 한국 땅을 처음 밟는 것인 만큼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이들 전기차 모델들이 국내에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시각도 많다.
최근 완화하곤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중국산 배터리와 관련한 불안감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런 데다 상대적으로 짧은 겨울철 주행거리가 실제 차를 보유했을 때 미치는 영향 등을 확인하는 데는 일정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KG모빌리티 KR10 디자인 모델. <비즈니스포스트> |
레이 EV와 토레스 EVX의 저온 주행거리는 모두 상온과 비교해 70% 후반대 수준을 인증받았지만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기아 EV6 롱레인지 2륜구동(2WD) 모델의 저온 주행거리는 446km로 상온 기준(483km)의 92.3%에 달한다.
하지만 내년부턴 국내에선 LFP 배터리를 단 기존보다 싼 전기차 출시가 잇달아 예고돼 있어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가격과 차종 등에서 전기차 선택지가 더욱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 경차 캐스퍼를 위탁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는 내년 하반기 캐스퍼 전기차 출시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캐스퍼 전기차에도 레이 EV와 같은 CATL의 LFP 배터리가 장착될 것으로 보고있다.
KG모빌리티는 내년 코란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준중형 전기 SUV KR10(이하 프로젝트명)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토레스 EVX에 기반한 전기 픽업트럭 O100, 대형 SUV 전용전기차 F100 등 3종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KG모빌리티는 쌍용차 시절인 2021년 말 중국 BYD와 배터리 개발 및 생산을 위한 기술협력 협약을 맺은 바 있어 앞으로 출시될 전기차에도 BYD의 LFP 배터리가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하는 국내 LFP 배터리 탑재 전기차 출시는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확대 추세를 보일 공산이 커 보인다.
LFP 배터리를 탑재한 국산전기차 모델은 준수한 상품성을 갖추고 기존보다 크게 낮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어 국내 전기차 판매 반등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LFP 배터리는 지금까지 국산 전기차에 탑재돼 온 삼원계 배터리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안정성이 높아 화재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장점이 있다. 또 배터리 열화현상도 적어 수명도 긴 편이다.
다만 삼원계 배터리보다 무겁고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고 저온에서 주행거리가 크게 감소하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내에 새로 나올 전기차들은 이런 단점을 상당 부분 극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삼원계 배터리 금속 리사이클링(재활용) 생태계를 구축까지는 아직 최소 5~10년의 시간이 남아있어 그 전까지 완성차업체들은 누가 더 많은 전기차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느냐가 기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상황"이라며 "저가 원재료의 안정적 조달이 가능한 LFP 배터리는 배터리 전기차 생태계 확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할 대안"이라고 말했다.
카이즈유데이터센터 통계를 종합하면 올해 들어 국내에서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크게 꺾이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에서 전기차는 모두 7만8466대가 판매돼 2022년 상반기보다 13.7% 증가하는데 그쳤다. 더구나 7월 국내 전기차 월간 판매량은 1만4614대에 그치며 지난해 7월보다 6.4% 줄어들었다.
2021년과 2022년 전년대비 국내 전기차 판매 성장률은 각각 115.1%, 63.8%였다.
글로벌 주요 전기차시장과 비교해도 한국의 전기차 판매 성장률은 크게 낮은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 미국과 유럽의 전년 동기대비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각각 47%, 45%로 같은 기간 한국의 3배를 훌쩍 넘어선다.
특히 한국과 유럽의 지난해 기준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9.76%, 13.9%다. 국내 전기차 판매는 두자릿수 비중에 이르기도 전에 급격한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올해 들어 국내 전기차 판매 기세가 주춤하는 것은 정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축소,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충전비용 부담 증가, 충전 인프라 부족 등 다양한 요인들이 지목된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여전히 높게 형성된 전기차의 가격이 꼽힌다.
일례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의 시작가격은 5005만 원으로 동급의 투싼 1.6 가솔린 터보 모델 시작가격(2603만 원)의 약 2배에 달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