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손전등, 수첩, 달력, 시계, 지도, 녹음기, 거울, 카메라, MP3플레이어, 라디오….
서로 상관 없어 보이는 이 물건들의 공통점은 뭘까. 애플이 2007년 처음 스마트폰을 내놓은 뒤 별 필요가 없어진 것들이다. 스마트폰은 이런 일상 속 물건 몇 가지를 대체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이 7월2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삼성 갤럭시 언팩 2023’에서 갤럭시Z플립5와 갤럭시Z폴드5를 공개했다. <삼성전자> |
게임과 메신저뿐 아니라 비행기 기차 버스 등 예약, 데이트 상대 찾기, 강의 수강, 음식 배달, 이메일, 택시 부르기, 쇼핑, 건강관리 등 생활 속 대부분 일을 손바닥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만큼 스마트폰은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스마트폰의 '퍼스트 무버(선도자)'인 애플이 현재 시가총액 세계 1위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을, 그것도 한 집에 하나씩 있던 TV나 냉장고 가격에 이르는 비싼 물건을, 예쁜 디자인으로 무장시켜 누구나 하나씩 끼고 다니게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도 보인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 역시 한계에 점차 부딪히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10년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스마트폰의 품질과 기능이 상향 평준화하며 애플을 비롯해 어느 회사고 새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별다른 혁신은 없었다'는 말이 단골로 등장하는 점도 시장 정체에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애플은 지난 6월 확장현실(XR) 기기를 새로 공개하며 다시 세상을 바꿀 준비에 나섰다.
기존의 2차원 디스플레이 기기가 아닌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결합한 3차원 디지털 공간을 구현하는 IT기기로 일상의 일을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의도가 세상에 통한다면 애플은 스마트폰에 이어 확장현실 기기에서 퍼스트 무버의 위상을 이어가며 세상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
하지만 확장현실 기기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대중화되기에 갈 길이 아직 멀다는 시각이 많다. 일단 폼팩터(외형)에 한계가 있다. 고글처럼 써야 하니 스마트폰처럼 일상에서 늘 사용하기에는 불편하다.
가격도 널리 확산하기에는 비싸다. 애플이 공개한 확장현실 기기 비전프로는 가격이 우리 돈으로 450만 원이나 된다. 더구나 애플은 확장현실 기기를 일상에서 사용할 필요성도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
이로 인해 확장현실 기기가 '흰 코끼리 증후군'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겉보기에는 근사하지만 돈이 많이 들고 처치 곤란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확장현실 기기가 세상에 확실한 필요성을 보이기 전까지 폴더블폰은 IT 기기 시장을 이끌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폴더블폰은 삼성전자가 2019년 처음 세상에 내놓을 때만 해도 주요 외신에서 조롱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뭔가를 접고 싶다면 색종이나 목도리, 핫도그빵 같은 물건을 대신 접어라"며 삼성전자의 폴더블폰을 향해 비판적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해마다 꾸준히 폴더블폰의 품질과 디자인을 개선했고 후발 중국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개선된 갤럭시Z플립5와 갤럭시폴드5를 최근 공개했다.
▲ 삼성전자의 갤럭시Z플립5(왼쪽)과 갤럭시Z폴드5의 모습. <삼성전자> |
갤럭시Z플립5는 '아재폰'이라는 삼성전자의 기존 이미지를 불식할 정도로 예쁜 디자인으로 무장했다는 평가가 많다.
외부 디스플레이를 키워 일상적 기능을 불편 없이 처리할 수 있도록 했고 플렉스 힌지(경첩)로 완성도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갤럭시Z폴드5 역시 디자인을 크게 개선했고 두께와 무게를 줄였다. 이에 기존 스마트폰처럼 '편하게 가지고 다닐 만하다'는 평가가 많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이 폴더볼폰 판매확대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삼성전자가 시장을 선도하면서 "쓸데없이 왜 접냐"던 애플도 앞으로 2년 안에 폴더블폰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성장의 한계를 겪는 스마트폰시장에서 폴더블폰의 성장성이 가팔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분석을 보면 폴더블폰 시장 규모는 2027년에는 연간 1억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보다 5배 이상 확대된다는 것이다.
지금껏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출하량에선 1위를 차지했으나 브랜드 가치 측면에선 애플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하지만 폴더블폰에서만큼은 꾸준한 기술개발을 통해 퍼스트 무버로서 위상을 확실히 다져가고 있다. 폴더블폰은 삼성전자가 취약했던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선봉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폴더블폰의 디자인과 품질 혁신을 지속해서 이어간다면 정체에 빠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프리미엄폰으로 얼마든지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폴더블폰에 이어 롤러블폰 시장도 선도한다면 기존의 태블릿PC와 노트북 시장 수요를 상당 부분 끌어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계열사 삼성디스플레이는 폴더블 디스플레이와 롤러블 디스플레이에서 압도적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어 폼팩터 혁신 경쟁에서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10만 전자'로 도약하는 데 있어 키워드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메모리와 파운드리(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성장을 꼽는다.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를 가늠하는데 폴더블폰의 판매 확대 및 디자인과 기술 혁신 여부도 눈여겨볼 필요성이 크다. 박창욱 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