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위해 피 뽑히는 투구게, 유한양행 ‘푸른 피’ 대체 생물다양성 보호 앞장

▲ 유한양행이 인간을 위해 피를 뽑는 투구게를 대체할 수 있는 시험법을 개발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살아있는 화석’ 투구게의 피는 푸르다. 색깔만 독특할 뿐 아니라 유용한 성질도 갖추고 있어 의약품의 독소 여부를 검출하는 데 쓰인다.

그래서 매해 투구게 수십만 마리가 인간에게 잡혀 피를 뽑힌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투구게는 앞으로도 계속 헌혈을 당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푸른 피를 대체하는 시험법은 이미 개발됐다. 다만 제도화와 기업의 도입이 관건이다. 국내에서는 유한양행이 새로운 시험법 도입에 앞장서며 투구게 보호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31일 유한양행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충북 오창 공장에서 투구게 혈액을 대체하기 위한 재조합 C인자 이용 독소시험법을 도입하고 일부 해외 파트너사의 수탁시험에 적용했다.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고 동물 윤리를 지킨다는 취지에서다.

투구게는 바다에 사는 절지동물이다. 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모두 4종이 있으며 주로 아시아와 북미 해안에 서식한다.

투구게가 지닌 푸른 피는 해로운 성분을 만나면 굳는다. 제약업계에서는 이 성질을 의약품에 세균 유래 독소인 ‘엔도톡신’이 함유돼 있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해왔다.

엔도톡신은 발열을 일으키는 독소로 의약품 생산과정에서 반드시 제거돼야 하는 물질이다. 현대 의약품의 안전성을 신용할 수 있는 배경에는 투구게의 지분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위해 피 뽑히는 투구게, 유한양행 ‘푸른 피’ 대체 생물다양성 보호 앞장

▲ 유한양행이 의약품 독소 검사에서 투구게 혈액을 대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투구게 혈액을 채취하는 모습. <비즈니스인사이더>


하지만 투구게의 피를 얻는 과정에는 당연하게도 희생이 동반된다. 

투구게는 산채로 잡혀 채혈당한다. 대체로 전체 혈액의 30%, 크기에 따라 50ml에서 최대 400ml에 이르는 피를 얻을 수 있지만 채열 과정에서 10%가량이 죽는다.

투구게의 주요 서식지인 미국에서는 채혈 후 36시간 안에 돌려보내주도록 규정돼 있지만 풀려나도 투구게의 운명은 편치 않다. 바다로 돌아간 개체 중 10~30%는 오래 살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암컷은 채혈로 인해 번식력이 약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릿수로 따지면 한 해에만 수십만 마리가 채혈대에 올라간다. 미국 존스홉킨스대는 연간 45만 마리가 잡힌다고 봤고 미국 내셔널퍼블릭라디오는 2021년에만 70만 마리 이상이 채혈됐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활발했던 시기 투구게 혈액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재조합 C인자 시험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투구게의 헌혈은 대폭 줄어들 공산이 크다. 재조합 C인자 시험법은 투구게 혈액 성분 중 독소에 민감한 C인자를 유전자 재조합으로 합성해 엔도톡신 검출에 사용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개발 자체는 오래 전 이뤄졌다. 다국적 바이오기업 론자의 경우 이 시험법을 2003년 처음 상업화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새로운 시험법을 인정하는 사례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유럽과 일본, 중국에서는 이미 기존 투구게 혈액 기반 시험법과 재조합 C인자 시험법의 동등성을 인정했다. 미국에서는 재조합 C인자 시험법의 사용 자체는 가능하지만 업체가 새 의약품을 생산할 때마다 투구게 혈액 기반 시험법과의 동등성을 입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형 제약사 일라이릴리가 론자의 시험법을 사용한 신약을 2018년과 2020년 연속으로 출시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6월 대한민국약전에 재조합 C인자 시험법을 새로 등재해 제약사들이 투구게 혈액 시험법을 대체할 길을 열었다. 유한양행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의 투구게 혈액 수요가 향후 지속해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간 위해 피 뽑히는 투구게, 유한양행 ‘푸른 피’ 대체 생물다양성 보호 앞장

▲ 유한양행은 투구게 보호를 포함해 다양한 ESG경영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백신, 의약품 등 제약산업이 성장할수록 투구게의 혈액 수요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내 관련 제도가 마련되는 대로 생산 제품에 새로운 독소시험법을 적용해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적었다.

제약업계에서 투구게 혈액을 대체하는 일은 살아있는 생명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 이외에도 더 큰 의미가 있다. 바로 지역 생태계 보전이다.

투구게를 남획하는 것은 지역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평가된다. 암컷 투구게는 한 번에 알 4천여 개를 낳는데 이 알이 철새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인 붉은가슴도요가 대표적이다. 붉은가슴도요는 한때 투구게 개체 수가 줄었을 때 함께 피해를 본 종으로 알려졌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북미에 사는 투구게 1종을 멸종취약종으로, 아시아에 있는 다른 1종을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면서 개체 수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까닭이다.

이같은 생물다양성 보호는 최근 유한양행을 포함한 제약바이오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적 주류로 자리잡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이 제약바이오 분야에도 빠르게 도입되고 있어서다.

유한양행은 현재 다양한 방법으로 ESG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허가받은 신약 ‘렉라자(성분이름 레이저티닙)’를 보험 급여가 적용되기 전까지 환자들에게 무료로 공급하는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P)을 결정했다. 또 출산 축하금으로 임직원 자녀 1명당 1천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를 신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