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라피더스 파운드리 경쟁 포기? 반도체 사업 목표로 이익 대신 '행복' 제시

▲ 코이케 아츠요시 라피더스 사장(왼쪽)이 2019년 1월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IBM과 협력계획을 을 발표하는 미팅에 참석하고 있다. <라피더스>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출자해 설립한 반도체 파운드리 전문기업 라피더스가 반도체를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게 자신들의 목표라고 밝혔다.

라피더스가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2나노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이 시장성을 갖추기는 어렵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고 TSMC 등 상위 기업과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25일 코이케 아츠요시 라피더스 사장과 인터뷰 기사를 통해 라피더스의 향후 파운드리 사업 방향성과 목표, 구체적 계획 등을 두고 언급된 내용을 전했다.

라피더스는 소니와 토요타, 소프트뱅크를 비롯한 현지 기업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출자해 2022년 신설한 파운드리업체다. 미국 IBM과 기술 협력으로 2027년부터 2나노 반도체 생산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코이케 사장은 라피더스가 미국 협력사 및 고객사를 찾기 위해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며 구글과 애플, 메타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의 이름을 거론했다.

이들 업체가 필요로 하는 데이터서버용 반도체를 현재는 대만 TSMC가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라피더스도 파운드리 협력사로 진입 기회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코이케 사장은 라피더스의 사업 모델이 TSMC와 큰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수의 글로벌 고객사를 대상으로 반도체 위탁생산을 진행하는 대신 소수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라피더스는 처음에는 5곳, 나중에는 약 10곳의 고객사를 대상으로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후 계획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두고 있다.

한꺼번에 수많은 고객사의 반도체를 동시에 위탁생산하는 TSMC나 삼성전자의 사업 모델과 비교하면 라피더스의 이러한 사업 계획은 많은 단점을 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대규모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비를 들여야 하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최대한 많은 고객사를 통해 매출과 수익을 거둬야 한다.

코이케 사장은 라피더스의 사업 목표가 금전적 이익을 실현하는 데 있지 않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을 내놓았다.

그는 “이익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며 “라피더스의 목표는 제품을 생산하고 공급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편리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러한 행복의 예시로 제시됐다. 반도체가 이러한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코이케 사장은 반도체 기업들이 점차 고객사의 주문에만 맞춰 생산을 하게 되면서 반도체가 상품화되었다는 데 아쉬움을 표시했다.

닛케이아시아가 전한 인터뷰 내용에서 라피더스의 반도체 파운드리사업 방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상품성과 수익성보다는 회사가 중심에 두는 철학적 가치를 앞세운다는 것이다.

반도체가 전 세계 대부분의 주요 산업과 경제에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 ‘반도체의 상품화’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코이케 사장의 발언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라피더스가 안고 있는 한계를 방증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 라피더스 파운드리 경쟁 포기? 반도체 사업 목표로 이익 대신 '행복' 제시

▲ IBM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2나노 반도체 시제품 이미지. < IBM >

라피더스는 반도체 제조업에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2나노 공정 상용화를 목표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상위 기업이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해 온 기술력을 수 년 안에 따라잡겠다는 현실성 낮은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셈이다.

IBM의 도움으로 2나노 미세공정 기술을 상용화해도 파운드리 사업에서 장점을 갖출 만한 생산 수율과 단가 경쟁력, 공급 능력 등을 확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따라서 코이케 사장이 반도체를 통해 상업적 성과를 거두기보다 세계의 행복에 기여하겠다는 모호한 목표를 제시한 점은 라피더스가 직면한 여러 난관을 보여주는 셈이다.

닛케이아시아는 인터뷰에서 “반도체 제조사의 역할은 고객사의 수요에 응답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코이케 사장은 인류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고객사들과 협력하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파운드리 시장 경쟁에 전면적으로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때 라피더스가 삼성전자와 TSMC, 인텔에 이어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 국가 간 경쟁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아진 셈이다.

삼성전자도 결국 파운드리 시장에서 강력한 새 경쟁자를 ‘다크호스’로 맞이하는 데 대한 우려를 충분히 덜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코이케 사장은 라피더스의 반도체 기술 개발 및 생산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 계획에도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앞으로 시설 투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라며 “현재는 자금이 충분하지 않지만 더 많은 기업들이 라피더스의 비전에 공감해 출자를 늘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