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 호텔에서 호텔 수영장 무료 이용, 웰컴 기프트로 최고급 화장품 증정, 라운지 해피아워(스낵과 음료 등 무제한 제공) 15시부터 18시까지 무료 제공 등의 상품이 포함된 매우 저렴한 호캉스 패키지를 내놨다.
이 패키지는 호캉스를 즐기는 고객들에게 소위 ‘혜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고 이 패키지의 판매가 모두 종료된 이후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 엔씨소프트가 리니지M에서 새롭게 오픈한 신서버 '진 기르타스'의 특전과 관련된 공지사항. <리니지M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그 공지는 해당 패키지의 해피아워 이용 시간을 15시부터 15시30분까지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패키지를 구매한 고객들에게 환불 조치는 시행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기자가 지어낸 허구다. 현실의 그 어떤 호텔도 이런 일을 벌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그 호텔은 소비자들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법적 책임까지 물어야 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업계가 있다. 바로 게임업계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국 게임업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엔씨소프트다.
엔씨소프트의 간판 게임, 리니지M에서는 최근 ‘진기르타스 사태’라는 사건이 발생했다. 굉장히 복잡한 사건이기 때문에 아주 짧게 요약해보도록 하겠다.
엔씨소프트는 새로운 서버인 ‘진 기르타스’ 서버를 열면서 이 서버의 이용자들에게 제공되는 특전 내용을 공개했다. 이 특전 내용을 보고 수많은 게임 이용자들이 유료 재화를 이용해 진 기르타스 서버로 캐릭터를 이전했다. 문제는 특전 내용이 캐릭터 유료 이전이 모두 완료된 이후 변경됐다는 것이다.
특전 내용이 변경되면서 수많은 이용자들이 유료 재화를 지출한 본래 목적이었던 고급 게임 아이템을 영구적으로 획득하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용자들이 반발하자 엔씨소프트는 해당 아이템을 영구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조건을 좀 더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 이벤트 역시 그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이미 다량의 재화를 소모한 이용자들을 기망하는 행위라며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중년 게이머 김실장’, ‘렌’ 등 유명 게임 유튜버 역시 이 문제를 매우 비판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게임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사태의 본질은 앞에서 기자가 허구로 꾸며낸 호텔의 이야기와 같다. 특정 서비스를 유료로 판매한 이후에 그 서비스의 내용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게임업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 업계의 재화와 서비스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 게임 속 가상세계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정확히 적용되는 규범을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에 존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과 달리 게임 회사는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 디지털 서비스와 관련해 서비스 제공 회사들이 함부로 소비자를 기망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명문화 된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규정이 아직 제정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엔씨소프트를 비롯한 모든 게임회사들이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게임회사의 ‘본질’이 무엇인가와 관련된 이야기다.
▲ 엔씨소프트 간판 게임 리니지M 이미지 <엔씨소프트>
게임회사의 사업은 기본적으로 게임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콘텐츠를 개발하고 그 콘텐츠를 이용자들에게 서비스하는 형태를 띄고 있다. 일종의 서비스업이라는 뜻이다.
서비스업종에서 기업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고객이 어떤 기업의 서비스를 신뢰하지 않게 되면 장기적으로 그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고객들이 기피하게 되고 신뢰의 상실은 자연스럽게 기업의 존폐와 연결된다.
한때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순위 1~3위를 독식하다시피 하던 리니지 3형제(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 중 리니지2M과 리니지W가 16일 기준으로 나란히 매출 순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한때 100만 원을 넘었던 주가도 14일 종가 기준으로 20만 원대로 추락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엔씨소프트의 실적 눈높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목표주가를 기존보다 무려 21.3% 하향했다.
리니지 3형제의 성공 이후 엔씨소프트가 내놨던 여러 가지 게임들인 블레이드앤소울M과 트릭스터M 등은 모두 게임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다. 출시 예정 신작인 ‘쓰론앤리버티’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논어 안연편에는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국가가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공자는 국가에는 ‘군사력과 식량, 그리고 백성의 신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대답했고 자공은 그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하냐고 재차 물었다. 공자는 ‘군사력’이라고 대답했고 자공이 또 남은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식량’이라고 대답했다.
기업의 자본력이 단기적으로 부족해져도 이익이 단기적으로 제대로 나지 않아도 소비자의 신뢰가 있다면 기업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신뢰가 없는 기업은 아무리 자본과 이익을 단기간에 많이 확보하더라도 영속하기 힘들다.
게임을 즐겨하는 소비자가 없다면 게임은 존속할 수 없다. 엔씨소프트가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