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도 전기차 배터리 수명을 낮출 수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전기차 배터리가 일반적으로 추운 날씨에 비교적 낮은 성능을 보인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폭염도 배터리 수명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 각국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기차 지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지만 극심한 기후변화가 이미 전기차 대중화에 약점으로 자리잡아 딜레마를 일으키고 있다.
1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보고되는 기록적 폭염 현상이 전기차에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배터리의 화학적 특성상 폭염 현상이 심장병이나 암에 비유할 수 있는 치명적 결함을 일으키며 수명을 대폭 낮출 수 있다고 전했다.
전기차를 충전하거나 운행하지 않는 동안에도 폭염이 배터리 내부에서 화학작용을 유도하는 촉매 역할을 하면서 수명 단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배터리 전문 조사기관 리커런트의 분석을 인용해 이렇게 전했다.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한파에도 취약하다. 극도로 추운 날씨에는 배터리 내부의 화학작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주행거리가 줄어드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폭염과 한파가 전기차 배터리에 미치는 화학적 영향은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을 띠고 있지만 전기차 성능에 핵심인 주행거리와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점에서 모두 치명적이다.
이러한 문제는 최근 지구온난화 등 여파로 극심한 기후변화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전기차 산업 전반에 큰 딜레마로 자리잡게 됐다.
전 세계 주요 국가는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내연기관 차량 대신 전기차 대중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전기차 및 배터리를 제조하는 기업과 소비자에 보조금 및 세제혜택 등을 지원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미 기후변화가 소비자 입장에서 전기차를 구매하기 꺼려지는 이유로 작용할 수 있게 된 만큼 정책적 대응 시점이 늦은 게 아니냐는 비판도 고개를 들고 있다.
극심한 기후현상이 벌써부터 전기차에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기차 비중이 지금보다 늘어나야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폭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텍사스와 애리조나, 조지아주 지역의 전기차 보급률이 미국 내에서 특히 높은 수준이라는 데 주목했다.
텍사스주 평균 기온이 최근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이미 시작된 폭염 현상이 올해 여름에 계속 이어진다면 전기차 배터리 수명 단축 사례도 더 많이 보고될 공산이 크다.
블룸버그는 텍사스주에 거주하는 한 전기차 구매자가 폭염이 발생할 때마다 그늘로 차를 옮겨두거나 창문을 열어두며 배터리 과열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례도 전했다.
▲ 폭염이 전기차 배터리 수명을 낮추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7월11일 폭염 현상이 기록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한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주행하고 있다. < AFP > |
해당 구매자는 전기차 배터리 수명이 단축돼 중고 판매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 80%에 이르는 소비자가 전기차를 구입할 때 배터리 수명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는 시장 조사기관 콕스오토모티브의 설문조사 결과도 언급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당국은 전기차를 판매할 때 배터리 상태를 반드시 측정하고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제를 도입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폭염이 심한 지역에서 전기차에 표기된 배터리 주행거리 및 수명이 실제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소비자들이 이를 사전에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블룸버그는 “한파가 전기차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이지만 폭염은 장기적으로 성능 악화를 이끌 수 있다”며 “전기차 구매자들도 올바른 관리 방법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