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급등한 2023년 상반기 증시, 강세장 신호인가 버블장세인가

▲ 미국 뉴욕시 금융가에 새워진 황소 동상을 2008년 10월18일 촬영한 사진. S&P500은 2023년 들어 월스트리트가 상승장(bull market)이라 부르는 성적표를 보여주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이전 저점 대비 20% 이상 지수가 올랐을 때 상승장이라 한다. 하지만 특정 대형기술주의 독주에 따른 거품이라는 시선도 나온다. <연합뉴스>

주가는 불안을 먹고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올해 상반기 증시가 전형적인 예이다.

전 세계 증시를 선도하는 미국 증시에서 나스닥 증시가 지난 6월30일 13787.91로 마감해, 연초인 1월4일의 10458.76에 비해 무려 32%나 올랐다. 상반기 실적으로는 1983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반기 실적으로는 닷컴버블이 절정이던 지난 1999년의 하반기 이후 최고이다. 미국 증시의 대표 지수인 에스앤피(S&P)500도 16%가 올랐다. 전 세계 자산시장은 상반기에 13%나 올랐다. 비트코인은 무려 80%나 반등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이에 따르는 경기침체 우려에도 이런 호실적은 의외이다.

이런 증시 실적을 놓고 시장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경기 호전을 알리는 신호로서 강세장이 열리고 있다는 주장이 그 하나이다. 반면, 인공지능(AI) 관련주에 촉발된 일부 대형기술주들이 주도한 버블장세라는 또 다른 주장도 있다.

‘불 마켓’(bull market), 즉 강세장의 일반적 기준은 전저점 대비 20% 상승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나스닥 지수는 전저점인 지난해 10월13일 장중 10088.83에 비해 7월1일 종가가 13816.77이었으니 37%나 올랐다. 강세장은 물론이고 초강세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에스앤피500 지수도 전저점인 지난 10월13일에 비해 27.6% 올랐다.

이런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현 상황을 강세장이라고 규정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기껏해야 강세장이 도래할 수 있다는 정도이다. 이는 지난해 증시의 대폭락 때문이다. 미국 증시는 지난 2021년 12월 말~2022년 1월 초 고점에 비해 여전히 10% 정도 빠진 상태이고, 다른 나라 증시는 고점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

에스앤피500 및 다우존스산업 지수를 만들고 관리하는 ‘에스앤피 다우 존스 인다이스’의 고위 지수분석가인 하워드 실버블래트는 전고점을 갱신해야만 강세장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에스앤피500은 강세장일수도 있겠으나, 2022년 1월3일의 4796.55라는 전고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강세장으로 선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놀라운 지수 상승에도 불구하고, 강세장 규정을 꺼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증시가 일부 대형기술주의 독주에 의해 상승했기 때문이다. 나스닥 지수에 속한 이른바 ‘장대한 세븐’(Magnificent 7)이라는 애플, 구글의 알파벳, 아마존,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의 메타, 엔비디아가 주가 상승의 90%를 담당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붐이 일기 시작해, 인공지능 관련 반도체를 생산하는 엔비디아가 무려 3배 가까이 올라, 주가 총액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인공지능 붐은 대형기술주 전반으로 퍼져, 애플이 3조 달러를 처음으로 달성했고, 7대 기술대형주 모두가 50~300% 내외로 급등했다. 마치, 닷컴버블 때의 상승을 재현하는 기세였다.

반면, 전통적 우량주 지수인 다우존스지수는 올해 상반기 고작 3.8% 상승에 그쳤다. 에스앤피 500에 속한 개별 주식들의 평균 주가 상승률은 3% 미만이었다.

대형기술주들의 독주로 인한 이런 주가 상승이 거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이 촉발시킨 주가상승은 2000년 전후 닷컴버블과 너무 유사하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닷컴버블 때 인터넷 기술처럼 시장에서 이익과 유효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지능의 수요와 이에 대한 최근 열풍이 버블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크다. 블랙록의 최고투자책임자(CIO) 토니 디스피리토는 인공지능에 대해 “그 수요는 정말로 실제한다. 인공지능을 1~2년 전 메타버스 혹은 가상현실 기술과 대비하면, 그 수요는 실제한다. 수익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부익부빈익빈의 최근 증시 상황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무엇보다도, 이번 상승장에서 재미를 본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펀드 조사회사인 모닝스타에 따르면, 에스앤피500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의 27%만이 올해 지수 상승률 이상의 수익을 얻는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에는 52%가 지수 상승률 이상이 이익을 냈고, 2000년 이후에는 평균 40%였다. 헤지펀드 등 대부분 펀드나 투자자들은 에스앤피500 지수 하락에 베팅했고, 현금을 챙겨둔 상황이었다.

내셔널 알리안스 시큐리티의 국제고정자산 수석 책임자인 앤드류 브레너는 <뉴욕타임스>에 “모든 사람이 방어적이었다”며 “많은 현금을 옆에 두고 있고, 이는 많은 펀드매니저에게 매우 뼈아픈 것이다”고 지적했다.

급등한 장세에서 실적을 못낸 대부분의 펀드와 그 매니저들은 연말 결산을 의식해 지금이라도 매수로 나설 수도 있다. 이는 단기간 상승을 부를 수 있으나, 주가 폭락의 배경을 만들 수도 있다. 상반기 상승장에 참여한 펀드와 투자자들은 이를 기회로 이익을 실현하고 빠지고, 경제지표가 나빠지면, 증시에 추가적인 자금 유입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1조8천억달러의 자산을 관리하는 세계 최대의 액티브 채권펀드인 핌코의 최고투자책임자 다니엘 이바신은 2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 시장이 경기침체를 막으려는 중앙은행의 능력에 너무 낙관적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을 계속할 것이라며 자산시장의 경착륙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니엘 이바신은 과거에 금리인상 효과는 5~6분기 정도 뒤에 나타났고, 중앙은행들이 추가적인 금리인상을 준비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이 종결됐다는 상반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미국 연준이 하반기에 최소한 한번의 추가적 금리인상을 할 것이고, 유럽 등에서는 그 보다 잦은 금리인상이 예상된다. 연준의 금리인상 중단 시기는 내년으로 넘어갔고, 유럽중앙은행 관리들은 금리인상 사이클이 조만간 끝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이 쉽게 잡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기술주들이 인공지능 붐으로 급등할 동안인 올해 연초부터 5월까지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 등 286개 회사들이 파산신청을 했다. 이는 2010년 이후 한해의 첫 5개월 동안 가장 많은 파산 신청이다.

도이치방크AG가 400명의 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99%가 높은 금리가 더 글로벌한 ‘사고’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최고투자책임자 앤드류 맥커프리는 <블룸버그뉴스>에 “인플레와 금리인상, 경기침체 우려 속에서도 보여줬던 시장의 회복력은 지금 하방 취약성의 씨를 뿌리고 있다”며 “역사장 가장 깃발을 높이 들었던 경기침체는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으나, 그 경기침체는 정책들이 지연된 효과가 종국적으로 발휘될 때 올 것이다”고 경고했다.

2000년 닷컴버블 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유명 투자자 제러미 그랜섬은 현재 시장을 ‘슈퍼버블’로 평가하면서 인공지능 열풍도 결국 그 붕괴를 막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보스턴 소재 자산운용사 GMO의 공동창업자인 그랜섬은 미국의 현재 시장을 두고 지난 100년간 네 번째 슈퍼버블의 '최종장'(the final act)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인공지능 열풍은 앞으로 두어 분기 더 증시 전반을 밀어 올릴 수도 있으나, 결국은 버블의 붕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랜섬은 2015년 이후 버블 붕괴를 예측했으나, 번번히 예상이 빗나가 ‘양치기 소년’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2000년 전후 닷컴버블 때도 폭락 뒤에 한차례 시장이 상승하다가 결국 2년 만에 바닥을 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자산시장은 지난해 하반기 폭락이 시작된 이후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았다. 시장이 갈 길은 아직 멀고, 시간은 충분히 지나지 않았음을 염두에 두자.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