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유상증자에 주주반발 가능성, 김준 주주 달래기 방안 고심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부회장(왼쪽에서 2번째)이 3월30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제16기 정기 주주총회' 뒤 열린 '주주와의 대화'에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SK이노베이션 >

[비즈니스포스트] SK이노베이션이 1조2천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가운데 주주들의 증권가에서 주주가치 희석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례적으로 주주서한을 공개하는 등 직접 전면에 나서 주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27일 증권업계 전망을 종합하면 SK이노베이션이 중장기 성장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유상증자가 단기적으로 SK이노베이션 주주가치를 희석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날 현대차증권은 SK이노베이션 목표주가를 기존 22만5천 원에서 19만3천 원으로, 투자의견도 매수(BUY)에서 중립(MARKETPERFORM)으로 내려 잡았다. 기존 키움증권도 목표주가를 20만8천 원에서 18만9천 원으로 하향했다.

증권가에서 주주가치 희석 가능성을 얘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상증자라는 재원조달 방식이다.

유상증자는 기업의 가치가 곧바로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발행 주식수만 증가해 1주당 주식의 가치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SK이노베이션이 주주배정 뒤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신규 발행하는 주식 수는 보통주 819만 주로 현재 기존 발행 주식 수의 8.9% 규모다.

SK이노베이션이 유상증자로 조달할 1조1777억 원 가운데 30%인 3500억 원을 채무상환에, 36%인 4195억 원을 부천-대전지구 R&D캠퍼스 조성 등에 사용하기로 사용하기로 한 점도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정경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이 유상증자로 타인자본을 상환한다는 점, 캠퍼스 건립 등에 유상증자를 활용하는 점 등 자체 이익 창출에 기반한 재원이 아니라 주주가치 희석을 통해 상환 및 투자가 이뤄지는 점은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23일 장 마감 뒤 유상증자 결정을 공시했는데 다음 거래일인 26일 SK이노베이션 주가가 6.1% 급락한 것은 주주가치 희석과 관련한 주주들의 불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투자 대상 사업이 성과를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주주들의 우려를 낳을 요인 가운데 하나다.

친환경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라는 방향성은 긍정적이지만 수소·암모니아, 탄소 포집·활용·저장사업 등 유상증자를 통해 육성하겠다는 사업들의 성과 도출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 유상증자를 통해 주주가치 희석은 불가피하다”며 “다만 SK이노베이션이 투자하는 수소·암모니아, 생활폐기물의 가스화, 탄소 포집 관련 사업 등 신사업 결과는 2025년 이후 나타나게 된다”며 기업가치 개선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이에 김 부회장은 주주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은 2017년 3월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뒤 2020년 3월, 2023년 3월 사내이사에 연임하며 3번째 대표 임기를 맡고 있다. 2021년 12월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만큼 김 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의 성장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책무, 그에 따른 주주들의 우려 역시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을 크게 느낄 법하다. 

김 부회장의 고심은 직접 주주서한을 보내는 등 전면에 나서 주주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있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유상증자 등을 추진하면서 기업의 대표이사가 유상증자 배경을 설명하는 주주서한을 직접 발표하는 건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김 부회장은 23일 유상증자 공시 뒤 곧바로 주주서한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은 미래 성장 재원을 마련하고 회사의 성장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건실한 재무구조를 확보하고자 이번 유상증자를 결정하게 됐다”며 “이번 유상증자를 결정함에 있어 회사는 주주가치에 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해서도 깊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김 부회장이 흔치 않게 유상증자 뒤 주주서한을 공개하며 주주들과의 소통 의지를 보인 또 다른 이유는 SK이노베이션을 향한 주주들의 불만이 이번 유상증자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의 우려는 2021년 10월1일 물적분할한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기업공개(IPO)를 통한 상장과 연관돼 있다.

향후 SK온이 상장하게 되면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다. 지주사 디스카운트란 모회사와 사업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해 있다면 모회사 기업가치에 반영되는 자회사 기업가치가 저평가되는 현상을 말한다.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은 물적분할이라는 방식 탓에 SK온의 주식을 확보하지 못했다. SK이노베이션을 성장성 높은 배터리 종목으로 보고 선택한 투자자라면, SK온이 상장을 마치면 SK이노베이션 기업가치 상승요인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SK이노베이션 주가는 배터리사업 물적분할 가능성이 처음으로 언급된 7월1일, 이사회에서 분할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힌 8월4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분할이 확정된 9월16일 각각 전날보다 8.8%, 3.8%, 4.4% 떨어지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이번 주주서한 공개에 앞서 3월 정기 주주총회 뒤 열린 ‘주주와의 대화’에도 직접 참석해 주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2021년 9월 임시 주주총회 뒤 취재진과 질의응답에서도 주주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고민을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 유상증자, SK온 상장과 관련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 부회장이 검토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주주가치 제고 방안에는 자사주 매입, 1주당 최소 2천 원 규모의 현금배당, SK온 상장 시점에 SK이노베이션과 SK온의 주식교환 등이 있다.

27일 SK이노베이션은 자사주 소각을 추진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당사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공시했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27일 ‘친환경 사업(그린 비즈니스) 확장을 위한 성장통’이란 제목의 SK이노베이션 보고서를 통해 “26일 장중 SK이노베이션 저점 주가는 –8.9%로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 발행 주식 수 증가(8.9%)를 이미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양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만큼 향후 경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