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이 '한한령' 이후 수년 동안 어려움을 겪어 온 중국에서 현지 시장을 재공략할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현대차는 '고급차·고성능', 기아는 '전기차 신차'를 앞세운 전략을 펼친다. 사진은 중국시장을 겨냥한 전기차인 기아 '콘셉트 EV5'. <기아>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이 '한한령' 이후 수년 동안 어려움을 겪어 온 중국에서 현지 시장을 재공략할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현대차는 고급차와 고성능차 위주로 판매량보다 수익성에 집중하는 반면, 기아는 다양한 다양한 전기차 신차를 출시하며 중국 시장에서 재도약을 노린다.
22일 현대차에 따르면 2021년 중국 1공장을 매각하고 지난해 중국 5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올해 1개 공장의 생산을 추가로 중단한다. 앞으로 가동을 중단한 2개 공장은 매각을 진행하고, 남은 2개 공장에 집중해 생산 효율성을 높일 계획을 세웠다.
'밑 빠진 독'과 같았던 중국 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칼을 빼든 것이다.
현대차는 2016년만 해도 중국에서 113만여 대 판매하며 현지 연간 최다 판매실적을 새로 썼다.
하지만 고고도미사일(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한한령으로 인해 이듬해인 2017년 판매량(78만5천 대)이 44%나 꺾였다. 2020년에는 44만 대로 판매량 50만 대 선이 무너졌다. 그 뒤 현지 판매량은 2021년 35만2천 대, 지난해에는 25만4천 대까지 곤두박질 쳤다.
현대차는 극도의 판매부진 속에서 2017년부터 적자에 시달려 온 중국 법인 베이징현대(BHMC)에 지난해 5980억 원을 추가 출자했으나 그해 BHMC는 연간 8212억 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이에 현대차는 생산라인을 줄여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중국 내 판매 라인업을 13종에서 8차종으로 축소하고 고급화 전략을 펼칠 계획을 세웠다.
제네시스, 팰리세이드 등 고급 및 SUV 위주로 현지 라인업을 꾸리고 특히 고성능 N 브랜드를 상하이를 중심으로 적극 판매하는 방침을 정했다.
바닥을 친 중국 사업장의 수익성 제고와 현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이미 코로나19 확산 뒤 반도체 등 자동차 부품 부족으로 생산차질을 빚은 지난 2년 동안 고급 및 고성능차 판매 전략을 펼쳐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등 고부가가치 차종 판매 확대에 힘입어 2021년에는 영업이익을 전년보다 2.8배 늘리며 최대 매출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에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치를 새로 썼다.
중국의 고급차 시장이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점은 현대차가 현지 고급화 전략을 펼치는 데 호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베이징 무역관에 따르면 2022년 중국의 프리미엄차(휠베이스 3천mm 이상, 배기량 3.0리터 이상) 판매량은 1년 전보다 11.1% 증가한 389만 대를 기록했다. 중국 전체 승용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5%에 이른다.
중국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악화한 가운데도 고급차 시장이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인 것은 중국 자동차 시장의 고급화 추세가 심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지 판매확대보다 수익성 개선에 방점을 둔 현대차와 달리 기아는 다양한 차급의 전기차 신차 출시를 준비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전기차 시장을 정조준 한다.
기아 역시 2016년 중국에서 65만여 대를 판매해 정점을 찍은 뒤 2017년 1년 만에 판매량(39만4천 대)이 절반 가까이 꺾였다. 2022년 중국 판매량은 9만5천 대까지 떨어졌다.
기아가 중국에서 부진을 거듭하던 6년 동안 중국 전기차 시장은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2016년 연간 판매 40만 대 수준에 그쳤으나 2022년 500만 대를 넘어서며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 가운데 63%를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에서 전기차가 2번째로 많이 팔린 유럽 판매량(162만 대)의 3배가 넘는 물량이 중국에서 판매됐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기아는 3월 중국 상하이에서 '기아 EV 데이'를 열고 현지 시장을 겨냥한 준중형 전기SUV 콘셉트카 EV5를 최초로 공개했다.
기아는 올해 EV6의 현지 판매를 시작으로 하반기 EV5를, 2024년에는 플래그십 SUV 전기차인 EV9를 중국 시장에 출시할 계획을 세웠다.
아울러 2025년 엔트리급 SUV, 2026년 프리미엄 세단, 2027년 중형 SUV 등 전기차 신차를 매년 출시해 모두 6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해 중국 전기차 판매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다만 현대차그룹이 중국에서 단기간에 오랜 부진에서 반등을 이뤄내긴 쉽지 않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앞서 현대차는 2021년 4월 중국에서 야심차게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준비했지만 2022년 상반기 기준 단 300여 대가 팔리는데 그쳤다.
또 중국의 거대한 전기차 내수 시장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기술력을 확보한 BYD, 상하이GM우링(SGMW) 등 자국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어 테슬라를 제외하면 중국 외 브랜드는 현지에서 의미 있는 판매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와 기아 모두 중국 프리미엄차 시장과 전기차 시장에서 단단한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시장에서 브랜드 신뢰도를 다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금껏 최대 규모의 중국 시장을 버릴 수 없어 눈덩이처럼 쌓이는 적자를 감당해왔다.
두 형제 회사가 '와신상담' 끝에 내놓은 중국 시장을 향한 새로운 전략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자동차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김경현 기아 중국법인 총경리는 4월 '2023 상하이모터쇼'에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의 성공은 기아 글로벌 전략의 핵심 요소"라며 "2030년까지 중국 시장에서 연간 45만대 판매를 목표하고 있으며 이 중 40%를 전기차로 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