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오른쪽)과 현시한 대우조선해양 노조위원장(왼쪽)이 7월29일 싱가포르에서 카스텐 몰스텐 BW그룹 CEO와 선박 수주계약을 맺고 있다. |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지만 걸어가는 길이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과는 사뭇 다르다.
해외 선주들을 설득해 조기에 대금을 받아 유동성 위기에서 탈출을 꾀하면서 노조의 파업도 막아내고 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여전히 벼랑 끝에 몰려있는데 '정성립식' 경영이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대우조선해양은 발주처 4곳에서 4억7천만 달러의 선박 건조대금을 조기에 받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또 해양 프로젝트를 발주한 고객사 한 곳과 1억5천만 달러 선수금을 조기에 받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9월 4천억 원 규모의 기업어음(CP) 만기가 돌아와 유동성 부족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 대금을 조기에 받아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성립 사장의 노력이 대금 조기지급을 이끌어 냈다.
정 사장은 7월 중순 유럽을 방문해 발주처인 선주사들을 만나 대금 지급을 요청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오랜 신뢰 관계를 쌓은 선주들이 정 사장의 설득에 자금 조기집행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의 이런 행보는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이 유동성 위기를 넘는 방식과 다르다. 다른 조선사들은 기존 공사에 대한 추가 비용정산(체인지오더)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거나 금융권에 여신 만기연장을 요청해 유동성에 숨통을 틔우고 있다.
하지만 정 사장은 계약상 나중에 지급하도록 명시한 건조대금을 미리 달라고 발주처에 요구하고 있다. 불황으로 선사들도 자금난을 겪고 있어 신조선 발주까지 말라붙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처럼 하기 힘든 역발상이다.
정 사장이 선주들과 쌓아온 돈독한 관계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 사장은 해외영업 현장에서 오래 근무해 조선업계에서 손꼽히는 영업통이다. 정 사장은 이를 활용해 지난해 취임 전부터 그리스에서 선박 수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정 사장은 노사관계에서도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자구계획에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포함해 희망퇴직 등을 진행한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신 정년퇴직 등 자연발생하는 퇴직자를 통해 2020년까지 직영인력 20%를 줄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30~40%를 감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온건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인지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파업권을 확보하고도 조선3사 가운데 유일하게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특수선사업부 분사 등에 반발해 투쟁 의지를 나타내고 있지만 본격적인 파업에 돌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시한 대우조선해양 노조위원장이 7월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계약식에 참석하는 등 회사 위기 극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정 사장은 6월말 업계 최초로 노조를 감사위원회에 참여하도록 했다. 또 경영회의에 노조위원장을 참석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를 들어주면서 노사관계 경색을 막아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일각에서 정 사장의 이런 경영방식에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심각한 위기상황에서 인력감축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안일하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자구안에 자회사를 모두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담았다. 그러나 업황 부진으로 자회사 매각은 지연되고 있다. 오히려 대우조선해양은 6월 망갈리아 조선소에 6천만 달러를 대여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보다 훨씬 절박한 상황”이라며 “구조조정을 해도 강도가 몇 배는 세야 정상인데 이런 대처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