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언론에 잘 나서지 않는다. ‘은둔의 경영자’라는 말까지 붙어있다. CJ그룹의 한 축인 문화 콘텐츠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외부노출이 거의 없다. 동생 이재현 회장에 대한 깊은 배려일 것이다.


그런 이 부회장이 언론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 부회장은 4일 블룸버그뉴스의 경제월간지 ‘블룸버그 마켓츠’와 인터뷰에서 “예전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더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CJ는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경이 "내가 CJ CEO" 주장한 이유  
▲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CJ그룹에 쏟아지는 이 회장의 경영공백에 대한 우려의 시선을 일축한 것이다.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 회장은 지난 1월14일 징역 6년의 구형을 받았다. 1심 선고는 오는 14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CJ그룹은 주요 계열사 전략기회책임자로 구성된 전략기획협의체를 통해 그룹을 운영하고 있으나, 경영공백에 대한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자산 24조 원, 재계서열 13위의 CJ그룹을 과연 협의체가 이끌 수 있겠느냐는 염려는 크고도 깊었다.


이 회장 구속 이후 CJ그룹 계열사의 주요 현안들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바이오 부문 글로벌 시장 지배력 1위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중이던 중국 라이신 업체 인수 협상을 중단했다. 생물자원(사료) 사업 부문의 경우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추진중이던 중국과 베트남 현지 투자협상도 지연되고 있다. 특히 CJ그룹이 인수한 대한통운은 당초 해외 M&A를 통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킨다는 전략이었지만 1조 원대 미국 물류 업체 인수를 잠정 보류했다


이 부회장이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CJ의 정상궤도’를 언급한 것은 이 회장의 공백에도 이 부회장이 CJ그룹의 선장 역할을 맡아 CJ그룹을 차질없이 운행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 것이다. 이 부회장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을 거듭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전략을 짜면 내가 실행에 옮기는 식으로 기업의 공동설립자 같이 지내왔다”며 “(내가)사실상 CJ그룹의 최고경영자( CEO)”라고 말했다. 쉽게 가라앉지 않는 CEO 리스크 우려에 대해 이 회장과 함께 그룹을 성장시켜 온 점을 상기시키면서 ‘내가 그룹을 챙길 것이니 염려말라’고 강조한 것이다.


물론 이 부회장은 ‘사실상 CJ그룹의 최고경영자’라는 말이 이 회장을 대신해 그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확대 해석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없는 동안 회장 지위에 오를 것이란 의미는 아니며, 직함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미경이 "내가 CJ CEO" 주장한 이유  
▲ 이재현 CJ그룹 회장
문제는 이 회장의 공백이 예상외로 길어지는 경우다. 징역 6년의 구형에 대해 재판부가 얼마나 선고할 지도 미지수지만, 이 회장의 건강상태도 좋지 않다. 이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은 몸 상태를 염두에 둔 듯 “많은 시간이 남지 않은 제 건강상태를 고려해 법이 허용하는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사실상 CJ그룹의 최고경영자’라고 발언한 것은 이 회장의 재판 결과에 따른 경영공백을 넘어 CJ그룹의 경영권에 대한 ‘안전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곧 경영권 승계를 놓고 오너 일가 내부에서 상당 부분 합의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이 회장의 아들인 이선호(24)씨는 지난해 7월 CJ그룹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이씨는 지난해 초 미국 컬럼비아대 금융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5월 병역면제 통보를 받았다. 이 회장은 1남 1녀를 두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콘텐츠 사업 분야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부회장은 “휴대전화와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기업이 이룬 성과를 콘텐츠 사업 분야에서 못할 이유가 없다”며 “세계인들이 일주일에 한번씩은 한식을 먹고 가끔 한국음악을 들으면서 1년에 두번쯤은 한국 영화를 봤으면 한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 공백 이후 CJ그룹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설정한 ‘한식’과 ‘한류’ 사업에 적극적이다. 지난 1월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는 CJ푸드빌의 ‘비비고’가 협찬한 ‘한국의 밤’ 행사에 참석해 두 사업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CJ그룹은 형제경영이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회장이 그룹의 큰 전략을 세우고 이 부회장이 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사업을 주도하는 등 역할을 나눠 경영을 해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1년 3월 CJ E&M 주식 5만여 주를 매입하면서 총괄 부회장으로 취임한 뒤 TVN, 엠넷, CGV 등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이 부회장이 CJ E&M을 총괄한 뒤 2013년 매출이 7,606억 원으로 2011년에 비해 65.6%나 늘었다.


CJ그룹은 1993년 제일제당의 계열분리로 삼성에서 독립한 뒤 제일제당 중심의 식품사업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와 유통, 물류 등 사업을 확장해 재계 서열 13위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과 이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