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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 팀장이 지난 5월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언주로 건설회관에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및 산재의심 피해가족과 첫 협상을 마친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이재용체제의 삼성을 놓고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주목되는 점은 과연 삼성이 76년 무노조 경영이라는 원칙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고 했고 무노조 원칙은 금과옥조처럼 전해져 내려왔다.
최근 이 원칙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삼성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산재 피해자들과 협상을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서비스노조와 협상을 타결했다.
이런 변화를 놓고 이재용체제의 가동을 위해 이건희 회장 시절의 해묵은 문제를 털어내려는 일시적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재용체제가 새로운 노사관계를 검토하고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투병중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그룹의 이미지에 흠이 생기는 것에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용체제의 등장에 앞서 이미지 개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시각인 셈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문제 등을 놓고 삼성과 꾸준히 대화를 해온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아직 삼성이 노조를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백혈병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실에서 삼성 내부에서도 무노조 경영이 오래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용체제가 노사관계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 자발적 변화인가, 강제된 변화인가
삼성전자는 지난 16일 삼성전자 반도체 산재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과 4차 협상을 벌였다. 지난 5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과로 시작된 협상 분위기는 전과 사뭇 다르다.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사장이 직접 참석해 성의를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지난 5월 열린 2차 협상에서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협상장을 잠깐 공개해 기자들이 사진취재를 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하자 이인용 사장은 “그럽시다”라며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 처음으로 협상장이 공개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6월 제 3차 협상이 있은 뒤 2주마다 협상테이블을 마련하기로 해 삼성 백혈병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를 찾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28일 1년 동안 갈등을 빚어온 삼성전자서비스노조의 제안을 대부분 수용해 협상을 타결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는 삼성 계열사 노조가 아니라 계열사의 협력사 노조다. 그렇지만 노동계는 삼성이 노조의 실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한다.
이를 놓고 삼성이 이재용체제가 해묵은 논란 속에서 등장할 수 없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려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지는 않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이 부회장에게 부담이 될 만한 해묵은 논란거리들을 해결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최근의 변화는 삼성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외부에 의해 강제된 변화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삼성 백혈병 문제는 사망자가 나오고 산업재해 관련 소송이 제기되는 등 7년 동안의 긴 싸움이 이어진 데다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사회적 공분이 높아진 데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와 갈등해소도 노조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삼성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자 이를 막기 위해 나선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체제의 가동은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도 잘 알고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서 노조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깊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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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오른쪽 사진) 관계자들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및 산재의심 피해 가족들이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언주로 건설회관에서 첫 협상 테이블을 가졌다. |
◆ 왜 노조가 필요한가라고 되물은 이건희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필요성”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잘 대해주는 데 왜 노조가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 회장은 “삼성은 노사안정을 실천하려는 강력한 의지에 따라 노사갈등을 예방적으로 해결하고 있고, 업계 최고의 처우를 보장하고, 노사협의회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공정한 인사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은 이병철 회장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는 경영철학에서 시작됐다.
삼성은 노조가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령노조 설립이라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이 방법은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전까지 노조설립을 막는 수단으로 요긴하게 이용됐다.
삼성은 1977년 제일제당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려고 하자 이런 방법으로 이를 좌절시켰다. 1987년 삼성중공업 창원2공장에서 노조가 설립되려고 할 때도, 1988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노조설립 움직임이 보일 때도 이 방법을 썼다.
삼성에서 노조설립이 유령노조 때문에 단 몇 시간 차이로 무산되는 일도 빈번했다.
삼성이 노조설립 시도가 나타날 때마다 그룹 차원에서 노조설립에 앞장선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유와 협박, 매수 등의 방법을 동원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해고도 불사하겠다는 처음의 각오는 이런 방법 앞에 사라지고 노조설립 포기각서를 쓰기도 했다.
삼성은 독일지사에서 법원판결을 무시하며 노조결성을 막다가 현지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는 일도 있었다. 1995년 3월 삼성전자의 독일지사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면서까지 노조결성을 방해했다는 정황이 포착돼 수사대상에 올랐다.
당시 독일언론들은 삼성전자가 일부 노동자들의 ‘종업원평의회’ 설립시도를 방해하고 돈으로 회유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독일의 종업원평의회는 노동조합과 별도로 사용자와 근로조건 등을 협의해 공동결정하는 노동자 대표 조직을 말한다. 독일 헤센주 노동법원은 “종업원평의회 구성을 보장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