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3-05-16 15: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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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미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아이오닉5와 EV6에 대규모 할인을 단행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라인업이 모두 현지 전기차 구매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 뒤 최근 판매 축소가 본격화하자 '최후의 카드'를 빼든 것으로 분석된다.
▲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에서 내연기관차를 중심으로 이익체력을 크게 끌어올렸는데 앞으로 이를 활용해 전기차 가격경쟁력 회복하고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방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아 미국 판매법인(KUS)은 15일(현지시각) 오는 7월5일까지 EV6을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최대 7500달러의 인센티브(판매장려금)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에 리스 고객은 계약금 4999달러를 납입하고 36개월 동안 월 499달러에 EV6 윈드 후륜구동 모델을 리스할 수 있다.
또 신형 EV6 구매자에 대해서는 기아 파이낸스 아메리카가 3750달러의 보너스 현금을 제공한다.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HMA) 역시 5월 한달 동안 미국에서 2023년형 아이오닉5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캐시백 방식으로 3750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4월 미국에서 EV6은 1241대, 아이오닉5는 2323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판매량이 각각 52.8%, 13% 꺾였다.
1분기 누적 미국 전기차 판매에서도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6.5% 줄어든 1만4703대를 기록했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990만 원)의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된 영향이 본격화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현대차와 기아는 아이오닉5와 EV6을 구매하는 미국 고객들에게 직접 찻값을 깎아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8월 IRA가 발효되면서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들은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전기차 판매 순위 3위 자리를 지켰지만 앞으로 판매경쟁은 더욱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1분기 전기차 판매 톱5에 오른 1위 테슬라, 2위 GM, 4위 폭스바겐, 5위 포드는 모두 현지에 전기차 생산체제를 갖추고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애초 2025년으로 예정됐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전용공장 완공시점을 내년으로 앞당기는 데 그룹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에서 IRA에 따른 보조금 제외 적용을 받지 않는 리스 등 상업용 판매비중을 기존 한 자릿수에서 30% 이상으로 크게 늘려 최대한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늘리는 단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북미 지역에서 3월 상업용 판매 비중이 35%를 넘어섰고 기아도 4월 25%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기아가 EV6 리스 고객에 구매 고객보다 2배 많은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리스 차량 판매 비중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전체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5.8%에 그친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1분기 미국에서 판매한 전체 자동차 판매량 가운데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3.8% 수준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전체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연기관차 판매에서 수익성을 크게 키웠는데 이는 전기차 판매 인센티브 확대 전략을 추진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와 기아는 4월 미국에서 각각 7만812대, 6만8250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지난해 4월과 비교해 현대차는 14.8%, 기아는 15.5% 판매량이 늘었다.
올해 1분기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에서 합산 38만2354대의 자동차를 팔아 역대 1분기 최다 판매실적을 새로 썼는데 4월 들어서도 판매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수익성이 높은 SUV 라인업을 지속해서 확대해왔는데 SUV 판매 비중은 글로벌 자동차 판매 시장 가운데 미국이 가장 높다.
현대차의 1분기 미국 시장에서 SUV 판매 비중은 75.1%를 기록했다. 기아도 1분기 미국 판매량 가운데 SUV가 66.9%를 차지해 70% 수준에 육박했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올해 1분기 미국에서 1만3644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16.4% 늘었다. 제네시스가 지난해 미국에서 5만6410대가 팔리며 사상 처음 5만 대 판매를 넘어선 점을 고려하면 올해도 판매 신기록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역대 최고 판매 실적을 기록하는 가운데 고부가가치 차종 판매 비중도 지속 확대하면서 미국 판매법인의 이익체력은 어느때보다도 단단해졌다.
기아 미국 판매법인은 올해 1분기 전년 동기보다 47.9% 급증한 8784억3천만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도 같은 기간 3.3% 증가한 7121억3500만 원의 순이익을 냈다.
현대차와 기아 미국법인은 지난해 모두 역대 최대 순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은 순이익 2조5494억2300만 원, 기아 미국판매법인은 2조5254억7500만 원을 거둬 전년 동기보다 각각 147.9%, 195.3% 늘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최근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미국에서 전기차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추기 전에 현지 전기차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전기차 할인을 단행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주우정 기아 재경본부장 부사장은 "현지공장을 짓는 1년 정도 시간 동안 보조금 수혜가 가능한 리스 부분을 어느 정도 활용할 것"이라며 "그것조차 안 될 때는 인센티브를 가장 낮게 지급하고 있는 점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 부사장도 "미국 전기차 경쟁에서 밀리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전체 판매 중 전기차에 해당하는 부분은 인센티브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역대급 실적을 내고 있는 만큼 현지 전기차 시장 상황에 따라 전기차 할인을 더욱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미국에서 전기차 13만1천 대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지난해 현대차그룹 미국 전기차 판매량의 2배를 훌쩍 넘어서는 것이다.
올해 전기차 판매 목표량에 모두 IRA에 따른 최대 대당 보조금 7500달러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총 소요 비용은 9억8250만 달러(약 1조2900억 원)다. 이는 2022년 기준 현대차·기아 미국법인 합산 순이익 5조749억 원의 25.4% 수준에 그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