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SK그룹이 주력 계열사의 현금흐름 악화에 회사채 발행을 급격히 늘리면서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창립 70주년이라는 경사를 맞았지만 그룹의 재무상황은 '위기의 골짜기’를 지나게 됐는데 투자를 줄이고 유휴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 말라가는 자금줄 확보 총력, 최태원 재무 위기 벗어날 전략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이 말라가는 자금줄을 확보하기 위해 2023년 회사채 발행, 유휴자산 매각 등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8일 재계에 따르면 고금리 영향으로 5대 그룹의 돈 줄도 말라가는 가운데 SK그룹은 대규모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수혈하고 있다.

SK그룹은 올해 1분기에만 16개 계열사가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4월 말 기준 SK그룹의 회사채 잔액은 44조239억 원으로 연초보다 4조5410억 원 정도 늘었다. 5대 그룹 가운데 회사채 규모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

특히 올해 1분기에만 3조4023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에 1조39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4월 초에는 2조2천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SK하이닉스는 올해 추가적인 회사채 발행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김우현 SK하이닉스 CFO(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은 4월26일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신규 차입에 대한 실행을 고려해 봤을 때 2023년도 이자 비용은 지난해보다 2배 정도 증가한 1조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며 “향후 3년 동안 연평균 만기 도래 차입 규모는 4조~5조 원”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와 더불어 SK온도 현금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 놓여있다.

SK온은 2022년 말 기준 차임금 규모가 10조8천억 원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4조9천억 원이 은행 단기차입금이다. SK온은 먼저 대규모로 투자한 뒤 장기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배터리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이와 같은 단기차입금은 차환부담이 크다.

SK온은 올해 약 7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 세웠는데 수익성은 개선되고 있으나 올해 연간 영업흑자 전환을 놓고는 증권업계 전망이 엇갈리는 만큼 추가 자금 조달 방안이 절실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SK온은 실적을 감안했을 때 자체 신용으로 대규모 차입금 조달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SK온의 저조한 영업실적 수준을 고려하면 당분간 계열 내 직간접적 재무적 지원을 통한 자금소요 대응이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SK온 관계자는 "영업 본격화에 따른 현금흐름 창출 외에도 투자대상국의 인센티브 및 정책금융, 국내외 공적수출신용기관을 통한 파이낸싱, 합작법인(JV) 설립시 파트너사의 분담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의 대규모 적자로 SK그룹 전체 채무부담도 급증했다.

SK그룹의 총차입금은 2022년 말 기준 104조7700억 원으로 처음으로 100조 원을 넘겼는데 이는 2021년보다 22.8% 증가한 것이다. 게다가 국내 5대 그룹 가운데 차입금 규모가 가장 크다.
 
SK그룹 말라가는 자금줄 확보 총력, 최태원 재무 위기 벗어날 전략은

▲ SK그룹 총차입금이 2022년 말 기준 100조 원을 넘어섰다. 사진은 SK그룹 서린빌딩.


SK그룹이 이처럼 차입금 부담이 커진 것은 경기가 악화된 영향도 있지만 경기가 좋았을 때 재무건전성 관리에 소홀했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서 기회비용이 커졌고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에 너무 많은 금액을 사용한 것도 결국 실책이었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을 약 90억 달러에 인수했는데 올해도 영업이익을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 인수 합병 이후 반도체 재고가 급증했다”며 “낸드 시황의 드라마틱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실적 회복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태원 회장은 현재 그룹의 주력 현금창출원이었던 SK하이닉스의 재무구조 안정화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호 부회장이 SK하이닉스 대표이사로서의 역할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도 SK하이닉스의 위기 극복이 SK그룹 차원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최근 수펙스(SUPEX)추구협의회 경영진들에게 “투자금은 자산 매각으로 마련하라”며 각 계열사별로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맞춰 SK하이닉스도 자산매각 등 다양한 현금 마련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평가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상황이 더 악화되면 키오시아 투자 지분(평가금액 약 6조3천억 원)을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2022년 SK하이닉스는 SK U-타워를 5072억 원에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다만 계열사들의 자금경색이 SK그룹 전반의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배터리 사업에서 영업손실이 크기는 하지만 통신, 정유, 화학, 발전 등 다양한 사업포트폴리오를 갖춘 만큼 이를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신용평가는 “SK하이닉스의 경우 업황 다운사이클의 골이 깊고 SK온은 수익성 개선이 지연되면서 재무부담이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SK그룹은 다른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영업실적 개선을 통해 반도체 업사이클링이나 SK온의 수익성이 개선되는 시기까지 견딜 수 있는 재무여력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