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황 악화에도 TSMC가 투자 경쟁 주도, 삼성전자 인텔 대응 총력

▲ 대만 TSMC가 반도체 파운드리 업황 악화에도 올해 시설투자 규모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TSMC 반도체 생산공장 내부 사진.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반도체 파운드리 업황 악화에도 공격적 시설투자 계획을 유지하며 업계 선두 지위를 굳건히 지켜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인텔 등 경쟁사도 TSMC의 점유율을 따라잡기 위해 대응에 나서며 치열한 증설 경쟁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블룸버그 등 외국언론 보도에 따르면 TSMC는 올해 연간 시설투자 규모를 2022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 IT시장 침체와 경제 성장 둔화로 반도체업황이 크게 악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시장의 예상을 깨고 꾸준한 생산 증설을 진행하는 셈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TSMC가 올해 최대 360억 달러로 예고한 연간 시설투자 비용을 40억 달러 가까이 축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었다.

대만 경제일보 등 매체는 TSMC가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EUV 장비 구매 물량을 계획보다 40% 줄일 가능성이 크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TSMC가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역대 최고치에 가까운 연간 투자비용을 유지하기로 밝힌 점은 파운드리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지켜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삼성전자와 인텔 등 경쟁사가 TSMC의 점유율 추격을 목표로 첨단 파운드리 생산 투자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해 격차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엔비디아와 AMD,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가세한 인공지능 반도체 경쟁으로 첨단 파운드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TSMC가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기로 한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웨이저자 TSMC CEO는 “챗GPT는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가 (반도체 수요를 주도할 것이라는) 확신을 더욱 강력하게 실감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가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의 인공지능 서버 투자를 자극해 인공지능 반도체의 수요 증가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성장 기회를 찾겠다는 의미다.

블룸버그는 수익성보다 미래 성장을 우선순위에 둔 공격적 투자 전략이 투자자들에게 부정적 소식일 수 있지만 TSMC가 여러 난제를 충분히 극복해낼 저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TSMC의 투자 확대는 자연히 삼성전자와 인텔 등 점유율 추격을 노리는 다른 파운드리 업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공격적인 수준의 투자로 반도체 생산 규모를 확대하지 않는다면 TSMC의 점유율을 따라잡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인텔 역시 TSMC의 투자 방향성을 고려해 반도체업황 악화에도 EUV장비 반입 등 반도체 생산 증설을 위한 지출을 줄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추세는 EUV장비 공급사인 네덜란드 ASML의 1분기 콘퍼런스콜에서 확인된다.
 
반도체 업황 악화에도 TSMC가 투자 경쟁 주도, 삼성전자 인텔 대응 총력

▲ 미국 인텔 반도체공장 내부 사진.

ASML은 현지시각으로 19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올해 EUV장비 출하량 목표치를 60대로 기존 계획과 같이 유지한다고 밝혔다.

EUV장비 구매 비용은 파운드리업체의 전체 장비 투자금에서 약 70%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EUV장비 수요는 주요 파운드리업체의 투자 흐름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ASML은 주요 고객사와 논의한 EUV장비 공급 일정을 고려해 출하량 목표치를 설정한다.

TSMC 등 반도체 파운드리기업이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된 시스템반도체 재고 증가와 수요 감소에도 EUV장비를 확보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피터 베닝크 ASML CEO는 EUV장비 생산 능력이 고객사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며 2024년까지 공급 일정이 밀리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결국 삼성전자를 포함한 파운드리 주요 3사의 시설 투자 경쟁은 당분간 반도체업황과 관계 없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공지능과 같은 신산업 분야에서 첨단 파운드리 수요 증가 속도가 예상치에 미치지 못 한다면 이런 시설 투자 효과가 반영되는 시기에 공급 과잉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업계에서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 안정적 고객사 기반을 갖추고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1위 기업이 가장 효과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사례가 많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최상위 기업으로 자리잡아 업황이 악화할 때마다 SK하이닉스 등 경쟁사보다 뛰어난 실적 방어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파운드리시장의 경우에는 TSMC가 이러한 위치에 놓여 있는 만큼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무리한 투자에 따른 ‘역풍’을 맞게 될 가능성도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