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여론의 불신이 커지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부담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저자세 한일 정상회담 논란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국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 도청 의혹 등 외교안보 리스크가 이어지면서 외교 이벤트가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도청 의혹에 전기차 보조금 악재, 윤석열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부담 가중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6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선물을 받기보다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이 떠오른다.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을 놓고 '악의적 정황은 없다'며 미국을 두둔하는 낮은 자세를 취하면서 오히려 미국이 당당한 태도로 나올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국방부 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동맹국들은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는 진지함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브리나 싱 미국 국방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미국의 도청이 사실이라면 한국에 사과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우린 한국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야권은 도청 문제를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적극 활용하며 정부가 미국에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의 대통령실 도청 의혹에 항의조차 못 하는 정부가 과연 우리의 반도체와 배터리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정부는 미국의 잘못을 분명히 바로잡고 국익을 당당하게 지켜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한미 동맹 강화는 굳건한 신뢰에 기반을 둘 때 이뤄지는 만큼 이번 도청 문제에 당당히 사과를 요구하라"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 강화를 사실상 제1외교원칙으로 내세우며 국제관계에서 미국과 적극적으로 보조를 맞춰왔다.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국내 재단이 대신 판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해법을 내놓는 등 북한과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대외 전략에 호응했다.

지난달 중순 한일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이번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까지 외교 성과를 통해 국정 동력을 갖추겠다는 구상이었으나 대통령실 도청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부로선 당혹스런 상황을 맞게 됐다.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명단에 포함되지 못한 것도 정상회담을 앞두고 발생한 악재로 평가된다.

미국 정부는 이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 지침에 따라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16개 전기차(하위 모델 포함 22개) 차종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북미산 조립' 요건만 맞추면 보조금 대상이었지만 올해는 엄격해지면서 배터리 요건을 맞춰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대상 차종이 크게 줄어들었다.

한미동맹을 최우선으로 해온 윤석열 정부가 두 나라 사이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인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해 미국 측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실은 즉각 대응에 나서면서 논란의 여지를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이날 긴급 브리핑을 열고 "우리 전기차 수출에 대한 타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어느 정도 선방했다"며 "현대차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가 크게 타격을 받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차의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이 2024년 하반기부터 (전기차를) 양산하면 '북미 내 최종 조립' 기본 여건을 내년 하반기에는 충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외교안보 리스크로 지지율 하락세에 고전하는 윤 대통령으로선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절실하다.

리얼미터가 1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3.6%로 지난해 10월 셋째주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한국갤럽이 14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27%로 내려앉으며 5개월 만에 30%선이 무너졌다.

윤 대통령은 외교 순방 때마다 각종 논란을 겪으면서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 순방 당시 전용기에 사적 지인을 대동했다는 비선 논란에 휩싸였다. 같은 해 9월 북미 순방길에선 '바이든 날리면' 논란이 일었다. 세 번째 순방인 11월 동남아 순방길에선 특정 언론의 전용기 탑승 배제 논란이 불거졌고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에선 "UAE 적은 이란" 실언 논란이 일었다.

그때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 나토 순방 때인 지난해 6월5주차엔 6%포인트, 북미 순방 때인 9월5주차엔 4%포인트, 동남아 순방 때인 11월3주차엔 1%포인트 떨어졌다. UAE‧스위스 순방 직후인 1월3주차에만 1%포인트 올랐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