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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가운데)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8일 현대차그룹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현장을 찾았다. 왼쪽은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오른쪽은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인자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정 회장의 오른팔 혹은 현대차그룹의 2인자로 불렸던 많은 인사들은 예상보다 일찍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점에서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2인자를 두지 않는 정 회장 옆에서 오랜 시간 정 회장을 보좌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정몽구 복심, 김용환
21일 재계와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에서 김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을 제외하면 가장 젊은 부회장이다.
김 부회장은 정 회장의 복심으로 불린다. 정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읽으며 각 계열사와 정 회장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12월 정의선 부회장과 함께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지금까지 부회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부회장 9명 가운데 정 부회장과 함께 가장 오래 부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김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에서 학연도 인맥도 없이 출발해 오로지 능력으로 인정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부회장은 동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현대차에 입사했다. 현대차에서 고단한 해외영업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1년 현대차 유럽사무소장을 거쳐 2003년 기아차 해외영업본부 부사장을 거쳤다.
김 부회장의 전환점은 2007년 12월 현대차 해외영업본부장 사장으로 중용된 시점이다. 당시 정 회장은 해외판매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했지만 판매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정 회장은 기아차 해외영업본부 부사장으로 실력을 발휘한 김 부회장에게 현대차의 해외시장 공략을 맡겼는데 김 부회장은 정 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2009년 현대기아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세계 자동차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판매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
김 부회장은 2008년 현대차 기획조정실 사장이 됐다. 현대차의 전략과 안살림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김 부회장은 2010년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진두지휘하며 다시 정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 현대그룹으로 넘어간 현대건설을 되찾아오는 것은 정 회장의 숙원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김 부회장은 2014년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인수도 주도했다. 현대차그룹의 야심작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을 지금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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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왼쪽) 서울시장과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이 지난 2월17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서울시-현대차 사전협상결과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정 회장은 최근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공사현장을 찾았는데 김 부회장은 어김없이 정 회장 바로 옆에서 보좌했다.
김 부회장은 ‘실무형’이다. 그림자처럼 정 회장을 따라 다닌다.
입이 무거운 것으로 정평나 있다. 현대차그룹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데도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다. 신중하고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2인자가 이런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
김 부회장은 정의선 부회장과도 의사소통이 원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김 부회장이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 단명했던 2인자들
김 부회장 이전 현대차그룹에서 2인자로 불리던 인물들은 대체로 일찍 회사를 떠났다.
박정인 전 부회장과 김동진 전 부회장은 한때 정 회장의 오른팔로 불렸다.
박 전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과 30년 동안 현대그룹에서 동고동락했다. 1969년 현대차에 입사해 1977년 정 회장과 함께 현대정공(현대모비스) 설립을 주도했다.
박 전 부회장은 현대정공이 종합기계회사에서 자동차부품회사로 탈바꿈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 회장의 박 전 부회장에 대한 신뢰는 정 회장이 2006년 비자금 사태로 구속된 뒤 석방되자마자 박 전 부회장을 불러들인 데서도 알 수 있다.
당시 현대차그룹에서 박 전 부회장이 “정 회장의 표정만 봐도 무엇을 지시할지 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정 회장의 의중을 잘 읽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석에서 정 회장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얼마 없는 핵심측근으로 꼽히기도 했다.
박 전 부회장은 2002년 현대모비스 회장으로 승진했다가 2005년 고문으로 물러났다. 그러다 정 회장의 부름을 받고 2006년 9월부터 현대차그룹 기획총괄담당 부회장으로 정 회장의 곁을 지켰다.
그러나 박 전 부회장이 정 회장의 바로 옆에서 보낸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박 전 부회장은 2008년 4월 신흥증권(HMC투자증권)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 반 년 만에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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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진 전 현대차 부회장이 2008년 1월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김동진 전 부회장도 한때 정 회장의 그림자라는 말을 들었다.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이다. '깜짝인사'로 유명한 현대차그룹에서도 김 전 부회장만은 예외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정 회장이 큰 그림을 그리며 해외투자 등 그룹 차원의 핵심적 의사결정을 했다면 재경, 수출, 생산, 영업 등 일상적 경영활동은 김 전 부회장의 역할이었다.
현대차 비자금 사태 이후 정 회장의 빈자리를 메우며 현대차 경영을 실질적으로 총괄하기도 했다.
김 전 부회장은 2000년 현대차 상용사업부문 사장을 거쳐 2001년 대표이사 사장, 2003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장수 CEO가 드문 현대차그룹에서 김 전 부회장이 현대차에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7년 가까이 대표이사를 맡았다는 점은 김 전 부회장에 대한 정몽구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 전 부회장은 2009년 갑작스럽게 현대모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그룹 2인자가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로 옮긴 이유에 대해 정몽구 회장이 ‘직접경영’의 비중을 더 높이기로 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정몽구 회장이 2인자를 오래 두지 않는 이유에 대해 2000년 불거진 ‘왕자의 난’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2000년 왕자의 난 당시 가신으로 불리던 최측근 인사 때문에 현대그룹이 휘청거렸던 만큼 정몽구 회장은 2인자를 두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왕자의 난은 2000년 3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인사문제 때문에 시작됐다. 이익치 전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신그룹 일원이자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이었다.
정몽구 회장이 이익치 전 회장을 경질하자 정몽헌 회장이 정주영 회장을 찾아가 인사조치를 무효화하고 정몽구 회장을 회장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자 정몽구 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서명을 들고 나와 면직을 취소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