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고객사들의 맞춤 제작 수요 확대에 발맞춰 LG디스플레이의 수주형 사업이 올해부터 주력 사업 형태로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수주형 사업은 거래처의 요구사항에 맞춰 맞춤형 디스플레이를 제작해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시장 상황에 따라 불특정 제품을 대량 납품하는 수급형 사업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정호영 사장은 최근 LG디스플레이 주주총회에서 “2019년 11%에 머물던 수준이었던 수주형 사업의 매출 비중이 올해 들어 40%대 초반 선까지 확대됐다"며 "향후 2~3년 이내에 70%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하며 수주형 사업 확대에 고삐를 죄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통상 디스플레이산업은 시장 수요에 따른 불확실성이 큰 수급형 사업으로 여겨진다. 시장수요는 빠르게 변하는데 생산설비에 들어가는 고정비 비중은 매우 커서 시장변화에 맞춰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정 사장이 확대하려는 수주형 사업은 고객과 계약을 바탕으로 생산량과 가격을 안정적으로 가져가 디스플레이 업황 변동에 따른 위험을 낮출 수 있다. 게다가 사업구조를 수주형 사업 중심으로 전환하면 고부가가치 제품의 판매 비중을 높일 수 있는 이점도 가진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IT 완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핵심 부품이다. 수주형 사업에서 고객사는 완제품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디스플레이 업체에게 다양한 요구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디스플레이 업체는 자연스럽게 가격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 즉 수주형 사업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이기도 한 셈이다.
글로벌 IT기업들은 시장의 새로운 수요에 맞춰 폴더블 태블릿, 혼합현실(MR) 헤드셋 등 새 제품을 잇달아 내세우고 있다. 이들 제품에는 폴더블 디스플레이, 마이크로 LED와 같은 고부가가치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는데 각 제품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제작이 필요해 수주형 사업 형태로 디스플레이 납품 계약이 이뤄진다.
수주형 사업은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LG디스플레이에게 활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2조 규모의 영업손실을 냈는데 이는 경쟁 중국업체들이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저가공세에 나서면서 LCD 판매단가가 지나치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정 사장으로서는 수주형 사업을 통해 자연스레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데 이런 전략을 올레드 포함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기술 격차가 있는 경쟁 중국업체들로서는 쉽사리 따라올 수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BOE와 차이나스타 등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는 2010년대 LCD 부문에서 가파른 성장을 이뤘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정책에 더해 높은 수준의 LCD 공정표준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올레드 디스플레이 패널은 제조사별·공정라인별로 생산방식이 달라 균질화된 LCD와 달리 제조사별·공정라인별 품질에 있어 차이가 크다.
예컨대 올레드 생산공정 가운데 봉지(올레드 패널이 외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마감) 공정은 기판으로 쓰이는 소재가 유리냐 플라스틱이냐에 따라 각자 다른 방식이 활용된다.
롤러블이나 폴더블처럼 구부러지거나 접히는 패널을 만들기 위해서는 별도 공정도 개발해야 한다. 고객사의 세밀한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주형 사업이 강조되는 이유다.
올레드뿐 아니라 마이크로LED, 나노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IT제품 변화에 맞게 더욱 고도화·다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LG디스플레이는 차량용 OLED(올레드) 패널을 전형적 고부가가치 수주형 사업 제품으로 꼽는다. 사진은 LG디스플레이가 CES2023에서 선보인 '12.3인치 HOLE IN DISPLAY CLUSTER & 34인치 P-OLED'.
LG디스플레이는 일찍부터 슬라이더블 올레드, 폴더블 올레드 등 여러 종류의 폼팩터에 관심을 두고 기술개발을 해둬 수주형 사업에서 유리한 위지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정 사장은 투명 올레드를 통해 IT제품뿐 아니라 교통수단이나 가구 등 다양한 제품에서 강점을 확보하고 있다.
고객사의 세밀한 요구에 대응하는 수주형 사업 비중을 늘리기 위해서는 생산방식에 유연성이 더해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새롭게 라인을 설치하기보다 가동률이 떨어지는 기존라인을 활용하는 방식, 주요 부품을 표준화해 다양한 폼팩터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이 제시된다.
생산라인에서 만드는 품목을 몇 분 만에도 바꿀 수 있는 스마트팩토리도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의 모회사 LG전자는 2020년 12월 스마트팩토리 전담조직인 ‘전자생산기술센터'를 설립했다. 또 전자생산기술센터의 상위조직인 생산기술원에선 LG디스플레이가 사용하는 생산설비, 산업용 로봇, 공장 자동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 만큼 LG디스플레이 역시 스마트팩토리 등 공정기술 측면에서 모회사의 도움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LCD TV 디스플레이가 대표적 수급형 사업인 반면 다양한 차량용 디스플레이 분야가 수주형 사업으로 꼽힌다”며 “수주형 사업 매출 비중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 수주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