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에 이어 세계 9대 투자은행(IB)인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CS)가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 역시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예금자 및 투자자 심리 안정을 위한 정부의 선제적 대응 등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 이어 유럽까지 번진 은행 유동성 공포, '불안 차단' 커지는 정부 역할

▲ 19일(현지시각) 스위스 정부와 국립은행은 스위스 최대 투자은행 UBS가 2위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67년 역사를 지닌 크레디트스위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사진은 스위스 취리히 크레디트스위스 본사 모습. 


20일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에서 시작해 유럽으로 옮겨 붙은 은행의 유동성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여겨진다.

임동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날 리포트에서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이후 미국 정책당국의 대응은 신속하고 적절했지만 신용경색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며 “정부의 금융시스템 보호에도 국지적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 위험이 이어지고 있다”고 바라봤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예측이 무효한 시장이다”며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 불확실성이 투자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번 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앞둔 점도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 결정으로 시장의 관심은 다시 FOMC로 이동하고 있다”며 “은행의 유동성 위기에도 시장은 연준이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미국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을 꼽는다.

연준이 또 다시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미국 국채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은행의 건전성에 부담이 될 수 있고 이는 유동성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국내 시중은행은 이런 글로벌 은행들의 유동성 위기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리콘밸리은행이 미국 국채투자 비중을 높여 파산에 이르고 크레디트스위스가 잇따른 투자실패에 이어 재무구조가 악화한 것과 달리 국내 시중은행은 개인 예금과 대출상품 중심으로 안정적 자산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예금고객은 개인 43%, 법인 32%로 대부분 법인고객인 실리콘밸리은행과 큰 차이가 있다.

또한 1억 원 이하 계좌가 전체 저축성예금의 99.5%를 차지해 예금이 불특정 다수에게 퍼져 있다는 특성이 있다. 저축성예금 가운데 10억 원 넘는 계좌는 전체의 0.04%에 그친다.

국내 시중은행은 자산 투자 측면에서도 해외 주요 은행과 비교해 불확실성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22년 말 실리콘밸리은행의 만기보유증권 미실현손실은 약 151억 달러로 CET1자본(보통주자본) 대비 미실현손실의 비중이 111%에 이른다. 반면 신한과 KB국민, 하나, 우리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CET1자본 대비 유가증권 미실현손실 규모는 7%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신용평가는 17일 ‘국내 예금금융기관 유동성 리스크’ 리포트에서 “예금금액별 계좌 분포, 재무건전성 등을 고려할 때 위기 상황에서 국내 시중은행의 뱅크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국내 은행들의 유가증권 관련 리스크 역시 낮다고 판단된다”고 바라봤다.

다만 국내 금융시장은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큰 것으로 평가된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때부터 국내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여겨지고 있는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시장에 문제가 생긴다면 국내 증권사를 시작으로 연쇄적 어려움이 올 가능성을 크게 경계하고 있다.

저축은행도 과거 저축은행사태 당시 뱅크런 경험이 있는 만큼 현재 양호한 수준의 유동성과 건전성에도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에서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기시감이 드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며 “규제 이상의 자본비율과 PF대출 둔화세 등은 긍정적이지만 자산 대비 단기화한 부채구조 등을 고려할 때 거액의 예금 인출시 저축은행은 유동성 지표가 단기간에 악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신용평가도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과 관련해서는 주의를 당부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저축은행은 충성 고객층이 많지 않고 퇴직연금 예치 등으로 5천만 원 넘는 거액예금 비중이 과거 대비 높아진 점 등이 잠재 리스크”라며 “가계신용대출 역시 신용도가 전 업권에서 가장 열위한 수준으로 다중채무자 중심으로 부실이 전이가 될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제2금융권을 향한 경제주체들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이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뱅크런과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 위기 이후 사태를 그나마 안정화한 데는 미국과 스위스 정부 역할이 주요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정부는 발 빠르게 실리콘밸리은행 폐쇄를 결정한 데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모든 예금을 보호한다고 강조하며 사태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스위스정부 역시 1천억 달러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등 크레디트스위스 위기 이후 UBS의 인수를 적극 도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에도 비공식적으로 모여 크레이트스위스 사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부총리를 비롯한 금융당국 수장들은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이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비공개로 모여 경제현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지난주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이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현 시점에서 실리콘밸리은행 사태의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높은 경각심을 갖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