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운에 달린 건설업계 여성 입지, 10대 건설사 여성임원 비중 2%

▲ 국내 시공능력평가 10위권 건설사들의 여성임원 수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2022년 9월 분기보고서 기준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HDC현대산업개발, SK에코플랜트의 등기·미등기임원 670여 명 가운데 여성임원은 20명에 그친다.

[비즈니스포스트] “그나마 나는 비교적 운이 있었다.” 

이난숙 선광엘티아이 사장이 2022년 12월 여성건설인협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이해 발간한, 여성 멘토가 말하는 건설이야기 ‘위 빌드 어 시티2’에 기고한 글에서 한 말이다.
 
이 사장은 1980년대 초 정부가 여성엔지니어 우대정책을 펼치면서 대기업 건설사들이 처음 기술직 여성을 공개모집했을 때 현대건설 전기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그는 기고글에서 “이제는 여성, 남성의 편견이 많이 누그러졌다”면서도 여성 직원은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둬야 했던 ‘불문율’로 현대건설에서 사직했던 때를 언급했다.

이 사장은 현대건설에서 퇴사한 뒤 한양티이씨로 자리를 옮겨 설계본부장 부사장까지 올라간 건설업계에 흔치 않은 여성 임원이었다. 한국여성건설인협회 제7대 회장도 지냈다.

8일 3·8 세계 여성의 날 115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 건설업계도 분명 40여 년 전 이 사장이 발을 들였던 때와는 달라졌다.

2022년 8월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이른바 ‘여성 할당제’ 규정으로 시공능력평가 10위권 건설사 가운데 8곳은 최근 2년여 사이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거나 올해 주주총회에서 신규 선임을 앞두고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 제165조의20에서는 자산총액이 2조 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의 경우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별로 구성하지 못하게 정하고 있다.

여기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자본시장 등에서 실질적 평가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10대 건설사 대부분은 지배구조 개선 목적으로 직원 채용과 승진 등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 나아가 여성인재를 적극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변화는 여전히 더딘 모습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산업은 현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등의 특성도 있고 하다 보니 다른 산업군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여성 임원 비율이 적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국내 시공능력평가 10위권 건설사들의 여성임원 수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2022년 9월 분기보고서 기준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HDC현대산업개발, SK에코플랜트의 등기·미등기임원 670여 명 가운데 여성임원은 20명에 그친다. 삼성물산은 건설부문 미등기임원만 포함했다.

이 가운데 여성 사외이사 8명을 제외하면 실제 내부 여성임원은 12명, 고작 1.79%다. 2023년에도 건설업계에서는 여성이 관리직, 고위직으로 올라가기는 1%의 확률,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다.

각 기업별로 여성임원과 여성직원 비율을 살펴보면 우선 삼성물산은 등기임원 9명 가운데 여성 임원은 제니스 리 사외이사 한 명이다. 건설부문 미등기임원 가운데 여성임원은 2명으로 비율로는 2.3% 수준이다.

삼성물산은 2020년 제니스 리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을 영입해 10대 건설사 가운데 가장 먼저 이사진에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사내 여성임원은 2020년 1명에서 2021년 1명 더 늘었다.

삼성물산은 건설부문 여성직원 비율도 아직 10%가 채 되지 않는다. 지난해 3분기 직원현황 기준 건설부문 전체 직원 5500명 가운데 여성 수는 537명이다.

현대건설도 등기임원 7명 가운데 여성은 조혜경 사외이사 한 명이다. 미등기임원 81명 가운데 여성 임원은 2명으로 삼성물산과 같다.

회사 직원 6841명 가운데 여성 직원은 783명인데 지원부문 여성직원이 423명으로 비율이 높은 편이다. 토목부문은 전체 945명 가운데 여성직원은 23명, 건축은 전체 569명 가운데 여성은 43명, 플랜트는 전체 1290명 가운데 여성은 63명이다. 주택부문이 전체 1571명 가운데 여성이 231명으로 그 중 많다.

GS건설도 등기임원 7명 가운데 여성은 조희진 사외이사 한 명이고 미등기임원 46명 가운데는 여성임원이 없다. 내부에서 고위직에 오른 여성직원이 없는 셈이다.

전체 직원 5454명 가운데 여성 직원은 633명으로 11% 수준이다.

DL이앤씨도 마찬가지로 등기임원 6명 가운데 여성은 신수진 사외이사뿐이다. 미등기임원 60명 가운데 여성임원은 1명이다.

DL이앤씨는 지난해 11월 신규 선임한 임원 7명도 모두 남성이다. 2022년 상반기 기준 전체 직원 5560명 가운데 여성 직원은 806명 정도다.

대우건설은 올해 3월 주총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다시 선임할 예정이다. 미등기임원 97명 가운데 여성임원은 1명이 있어 등기·미등기임원 103명을 통틀어 여성임원 숫자는 2명이 된다.

현대엔지니어링도 다른 건설사들과 비슷하다. 등기임원 6명 가운데 여성임원은 김아영 사외이사 혼자고 미등기임원 52명은 모두 남자다. 2022년 상반기 기준 직원 수는 6750명, 이 가운데 여성직원은 748명이다.

SK에코플랜트는 10대 건설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여성임원이 많은 편이다. SK에코플랜트는 2022년 9월 기준 미등기임원 82명 가운데 여성임원은 4명으로 비율로 보면 4.8%다.

SK에코플랜트는 지금까지 이사진은 전원 남성이었다. 다만 2022년 12월 이미라 전 GE코리아 인사총괄 전무를 신규선임해 이사회에도 여성 사외이사가 합류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등기임원 7명이 모두 남성이었는데 올해 3월 주총에서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다. 미등기임원 12명 가운데 여성임원은 한 명이고 회사의 직원 1830명 가운데 여성은 259명이다.

포스코건설은 등기임원 7명, 미등기임원 22명 통틀어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다. 포스코건설은 전체 직원 6077명 가운데 여성 직원 수가 718명으로 10% 조금 넘는다.

롯데건설도 이사진 전원이 남성이고 여성임원은 2022년 12월 임원인사에서 처음 나왔다. 지난해 3분기까지도 미등기임원 60명이 전원 남성이었다.

롯데건설은 여성직원 비율은 9.6%로 10%가 되지 않고 과장부터 수석에 해당하는 관리자 직급 여성 비율은 1.7%로 나타났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3월8일 미국 뉴욕 루트커스 광장에서 여성 노동자 1만5천여 명이 남성과 비교해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들의 생존권과 참정권을 위한 대대적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당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생존권)과 장미(참정권)을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국에서는 1958년부터 세계 여성의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 3월8일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