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창업주가 한국에서 사업을 펼치며 처음 만든 계열사라 '한국 롯데그룹의 모태'로 평가받는 롯데제과의 이름을 '롯데웰푸드'로 바꿔 새 출발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 롯데제과가 곧 회사 이름을 롯데웰푸드로 바꾼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창업주의 유산을 하나 더 지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은 일이다.
제과라는 이름의 틀에 회사를 가둬두면 넓힐 수 있는 사업영역이 한정적이라는 판단 때문인데 앞으로 건강식품 시장을 노린 새 제품 개발 등으로 미래 먹거리를 마련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 이름을 바꾸면 글로벌 선진 시장 진출도 가능하다는 것이 신동빈 회장이 노리고 있는 기대 효과다.
22일 롯데제과에 따르면 회사 이름을 롯데웰푸드로 변경하기 위해 관련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3월에 열릴 정기주주총회에 사명 변경 안건을 올리기 위해 임시 이사회를 조만간 소집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이름을 변경하는 것은 정관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승인을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롯데제과는 회사 이름을 바꾸기 위한 제반 절차도 마쳤다.
롯데제과는 이미 지난해 12월29일 상호변경을 전제로 하는 가등기를 냈다. 이를 보면 '변경에 의하여 정하여질 상호'란에 '롯데웰푸드 주식회사'라는 이름이 명시돼 있다.
롯데제과는 사업목적도 미리 등록했다. 롯데제과가 사업목적에 올린 항목은 △제과와 제빙 및 그 판매업 △식료품 제조, 가공, 판매 및 수입판매업 △낙농과 유제품의 제조, 가공 및 판매업 등 모두 72개다.
신 회장이 롯데제과의 이름을 롯데웰푸드로 바꾸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기존 이름으로는 현재 롯데제과가 펼치고 있는 사업을 한 데 아우르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지난해 7월 롯데푸드를 합병하면서 가정간편식과 육가공, 유가공, 식자재, 급식사업도 포괄하게 됐는데 제과라는 사명으로는 이를 충분히 드러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확장성의 문제도 있다. 롯데제과라는 이름을 유지하면 미래 먹거리 사업에 진출할 때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앞으로 롯데제과의 이름을 롯데웰푸드로 바꾼 뒤 롯데그룹의 4대 미래 성장동력 가운데 하나인 헬스&웰니스 분야로 진출하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여겨진다.
롯데그룹의 두뇌 역할을 하는 롯데중앙연구소는 이미 올해 초 대대적 조직 개편을 통해 헬스&웰니스부문을 신설했다. 이 부문은 식사와 간식, 음용 대체 용도 및 라이프 사이클 기반 제품 개발을 목표로 한다.
'건강'과 '식품'이라는 의미를 모두 담게 되는 롯데웰푸드는 이런 흐름 속에서 헬스&웰니스 분야 진출의 선봉장에 설 수밖에 없다.
실제로 롯데제과는 최근 공개한 기업설명 자료에서 중요 사업전략 가운데 하나로 '신성장 동력'을 꼽으며 △제로 브랜드의 지속 육성을 통한 무설탕 시장 선점 △타깃 맞춤형 케어푸드 시장 진입 △식물성 제품 확대 운영 △고단백질 제품 카테고리 다양화 등을 제시했다.
롯데미래전략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건강식품 시장의 규모는 2021년 10조6천억 원 규모에서 2023년 13조 원대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며 2029년에는 25조7천억 원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 회장은 해외사업 확대도 눈여겨보고 있다.
롯데제과는 해외사업의 전략을 두고 현재 진출해 있는 인도와 독립국가연합(카자흐스탄, 러시아 등), 벨기에 등에서 롯데 브랜드의 입지를 더욱 다지는 한편 한국 음식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북미와 서유럽 등에도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롯데제과는 롯데그룹 식품군HQ(헤드쿼터) 전략경영부문과 글로벌 선진 시장 진출을 두고 협업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인수합병과 합작법인 설립 등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신 회장이 지난해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LG생활건강 출신 이창엽 사장을 롯데제과 새 대표이사로 발탁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여겨진다.
이 사장은 LG생활건강에서 '포스트 차석용'으로 불릴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던 인물로 한국P&G부터 시작해 허쉬(Hershey) 한국법인장, 한국코카콜라 대표, LG생활건강의 미국 자회사 더에이본컴퍼니 최고경영자 등을 지낸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다.
식품업계의 사명 변경 움직임을 보면 신 회장이 롯데제과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한 것은 의사결정 속도 측면에서 빠른 편으로 여겨진다.
CJ제일제당과 매일유업 등도 회사 이름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공식적으로 사명 변경을 중단했고 매일유업은 현재까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회사 이름을 바꾸는 데 드는 인적·물적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는 점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다. 모든 제품의 포장부터 시작해 모든 디자인을 바꿔야 하므로 최소 수십억~수백억 원 단위의 돈이 들어간다.
사명을 바꾸는 것이 회사의 뿌리를 지우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의 선택을 신중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CJ제일제당은 회사 이름에서 '제당'을 빼는 방안을 놓고 고민했다. 하지만 이를 놓고 그룹의 모태라는 상징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CJ제일제당의 시작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953년 부산에 세운 제일제당공업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신동빈 회장이 롯데제과의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것은 적극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신격호 창업주의 손길이 초창기부터 닿아 있는 회사 이름을 바꾸는 것은 이전 시대와 단절하고 새 시대를 여는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롯데제과 이름이 롯데웰푸드로 바뀌면 56년 만에 회사 이름이 바뀌게 된다.
롯데제과가 지난해 7월 롯데푸드를 합병한 뒤 1년도 안 돼 결정한 일이라는 점에서도 신 회장의 결단은 이례적으로 여겨진다.
신 회장은 롯데제과의 이름을 바꾸는 방안을 놓고 롯데F&C(푸드앤컬쳐)와 롯데웰푸드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희헌 기자